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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Oct 26. 2022

그냥 오늘만 산다

삶에게 옹졸해지지 않기 위해

얼마 전 책을 낸 친구가 말했다.

책 한 권 내고 나면 삶이 완전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 뒤에 생략된 말은 책을 내도 인생이 휘딱 뒤집어지 않는군, 비슷한 결로 계속 살아가야하는군, 같은 거였겠지.


꿈과 현실은 항상 다른 곳에 존재한다.

매일 글을 쓴다고 해서 책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낸다고 해서 팔리는 것도 아니다. 아닐 것이다. 난 아직 책 한 권 내 보지 못한 사람이니까. 다만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고 싶은데 현실이 자꾸 꿈을 내리누른다. 꿈이 현실을 비끄러매어 끌고 올라갔으면 하는데 자꾸만 초라해진다.


매일 글 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내 하루 꿈을 이는 쪽으로 쌓이고 있나.

내 딴엔 세상에서 제일 중한 일처럼 글을 쓰고 있을 때 남편이 퇴근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요동친다.

너 글 쓰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돈 한 푼 안 나오는 글 쓰는 게, 저 사람 하루 일하고 온 시간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도 마음이 흔들린다. 다른 사람 글을 읽고 첨삭하는 일, 글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을 해온 지 10년째. 그런데 정작 내 글은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다. 대나무 숲에 대고 외치는 것 같은 나의 이야기. 나의 글쓰기.


이번에 브런치 공모전 응모하면서 다른 사람 브런치 북을 훑어봤다. 나보다 훨씬 만듦새 좋고 구성력 탁월한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게 무서워서 브런치 첫 페이지에 뜨는 추천글 페이지도 황급히 넘기곤 했던 나였다. 그런데 이번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른 사람 브런치 북을 살펴봤다. 좋아요를 오천 개 넘게 받는 그런 글들을 읽어봤다.

읽고 나니 막막한 마음만 남았다. 오늘만도 이렇게 많은 브런치 북이 만들어졌구나. 세상에 글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내가 가지지 못하고 살아보지도 못할 소재를 가지고 쓴 이야기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영영.

시골에서 난 이렇게.

이렇게...


주먹으로 눈가를 훔치다 문득

'이렇게'가 뭘까, 오래오래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삶

자식을 키우고 돌보는 삶

아침 점심 저녁을 차리고 치우고 옷을 빨고 침구를 정돈하는 삶

브런치에 매일 몇 문장이라도 쓰는 삶

...

생각해보니까, 써보려니까 많았다. '이렇게'가.


매일을 기껏 애써 살아내고 있는데.

당장의 내 삶이 레드카펫 위가 아니라서 우울해지는 건 내 삶에게 너무 옹졸하고 치사하게 대하는 일이다.


뭐라도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마음, 너무나도 잘 알지만.

조용히 되뇌본다.

오늘을 살자고.

그냥, 오늘을 살자고.

마음아, 앉아라. 나는 그냥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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