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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Nov 01. 2022

엄마 말고 이름으로 불러

역할로만 남지 않는 하루

민들레 책에서였던가. 사람을 역할로 부르는 것을 지양한다는 문장을 읽고 나서, 그 의미에 대해 오래 생각해봤다.


나는 자식을 딸이나 아들이라는 성별 지칭으로 부르는 게 너무 싫어서 그냥 이름을 부르거나 별명을 부른다. 우리 곤듀님~ 같은 성별 지칭 플러스 이상한 존칭(?) 같은 것도 싫다. 나에게 자식은 그냥 존재 자체이고 성별 대상화한 대상이 아니길 바라서 이름 또는 본인이 불러주길 원하는 별명(하루에도 수십 번 바뀜)으로 부른다.


반면, 나는 아이에게 오직 '엄마'라고만 불렸다.

처음엔 이 사실에 별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는데, 내가 이 아이에게 '엄마'로만 불리는 이상 평생 우리 관계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최근 들었다.


이슬아 작가님은 글에서 자기 엄마를 이름으로 지칭하는데  좋아 보였다. 이슬아 작가님께 엄마라는 분은 역할이나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고 복희라는 여성, 사람 그 자체로 자식과 동등하게 상호 관계를 맺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할이 아닌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나는 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가족 안에서도 나는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근래에 배우자와 나누었고, 이제는 배우자도 나를 와이프나 여보라고만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른다. 시어머니께도 그렇게 부탁을 드려서 만나면 이름을 불러주신다. 내 이름이 가족 안에서 자주 들리니 참 좋았다.

나는 배우자를 주로 둥둥이(뚱뚱하다고 하면 화를 내기 때문에 '뚱뚱이'에서 순화된 버전)라는 별명으로 부르는데 아이들도 그 별명이 마음에 드는지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둥둥이 언제 와? 둥둥이 오늘 야근이야? 이런 말이 오가는 우리 집. 남들이 봤을 땐 콩가루 집안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괜찮다. 둥둥이도 괜찮다. 그러면 괜찮은 거라 생각한다.

나는 특별한 별명이 없어서 애들이 그냥 '수현아'하고 부르긴 민망한지 항상 엄마, 엄마 한다. 그래서 오늘 첫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는 너한테 엄마라고만 평생 불리고 싶진 않은데 넌 를 뭐라고 또 부를 수 있을까? 물으니, 사랑사랑, 수현 씨, 김부래(결혼 전 별명) 정도가 나온다.


그래. 그럼 그렇게 불러보자.

우리가 이왕 같이 살게 되었으니 서로 평등하고 편안한 관계를 맺으며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일단 이름부터 다양하게 불러보자. 가족이란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사이지 서로 무조건 희생하거나 고정된 역할로만 남아야 하는 사이는 아니잖아. 고정된 역할, 그 틀 부수기의 첫 발짝이 내 이름을 부르는 일이 되어도 좋겠어.


자,

엄마 말고.

이제부 나만의 이름 불러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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