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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Oct 31. 2022

딴딴해지고 싶지 않아

감히 누구를 미워하는가

둘째가 다니는 유치원은 핼러윈 행사를 대대적으로 하는 곳이다.

첫째도 같은 유치원에 다녔었는데, 나는 핼러윈이라는 문화를 겪으며 자란 세대가 아니라서 핼러윈 행사가 어떤 건지 잘 몰랐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되도록 핼러윈에 맞는 의상을 입혀 보내주세요'하는 문자를 받고도 그냥 원복을 입히고 사탕이나 몇 개 들려 등원시켰었다. 그런데 웬걸. 유치원 대문부터 웬 유령이 걸려있고 온갖 크기의 잭오 랜턴에 마녀 인형에 거미줄에 난리도 아니었다. 나중에 핼러윈 행사 사진이라고 유치원에서 보내온 사진내 자식만 초록색 원복을 입은 채 어색하게 서 있었다. 다른 애들은 모두 핼러윈 코스튬에 특수분장까지 얼굴에 하고 왔더랬다. 그날 저녁, 첫째는 원복을 입혀 보낸 무심한 엄마를 원망하면서 조금 울었다.

그래서 둘째를 같은 유치원에 보내면서 단단히 결심했다. 얘는 핼러윈이라는 문화에 발맞출 수 있게 성심을 다 하겠다고.

그래서 10월에 들어서자마자 온갖 핼러윈 물품을 사 모았다. 호박과 마녀가 그려진 포장지를 입 밀크 초콜릿, 독특한 호박 바구니, 옷깃에 보석이 촘촘히 달린 마녀 의상과 모자... 첫째가 왜 본인 때는 이렇게 성대하게 안 해줬냐며 성질을 좀 내긴 했지만 어쨌든 내 딴엔 빈틈없이 행사 대비했다.


그리고...

어제, 믿을 수 없는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에 뜬 문장들이 너무나 생경하고 믿을 수 없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8년 전 일이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자꾸 숫자가 올라갔다. 다친 사람들, 실종 신고된 사람들, 거기 달린 악의적인 댓글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정치인들의 태도까지... 너무 비슷했다. 결국 인재(人災)였다. 인간의 무심함과 악의가 쌓여 사람들이... 일상을 살던 사람들...



고민하다 어젯밤 둘째 유치원에 문자를 보냈다.

핼러윈 행사를 그대로 진행하는 거냐고, 그러면 안 될 것 같다고. 이런 상황에서 파티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아이들을 불러 지금 이태원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내일 사탕을 들고 학교와 유치원에 갈 수 없는지 얘기했다. 둘째는 울며 떼를 썼다. 싫어. 난 마녀 옷 입고 갈 거야. 먹을 것도 들고 갈 거야.

둘째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그것도 슬픔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5살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냥, 이렇게만 더 말했다.


얼마나 슬프겠어.

얼마나 슬프겠어...

혹시라도 너네 유치원에 서울에 갔던 친구가 있다면, 그래서 혹시라도 다친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슬프겠어.

너도 조금만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자기 전 깜깜한 방에 누워 둘째 손을 꼭 잡고 기도했다.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감히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다만 불쌍히 여겨 주소서.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오늘, 유치원에서 다행히 핼러윈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등원 길에 보니 요란했던 핼러윈 장식들도 걷혀 있었다. 그걸 보고 둘째도 더 이상 떼쓰지 않고 원복을 입고 교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교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화려한 얼굴 분장에 핼러윈 코스튬까지 입고 등원한 아이들이 많았다.  

그 모습을 보고 단박, 비난하는 마음이 들었다.

왜 저럴까.

저 애 양육자는 애를 저렇게 키우고 싶을까.

지금 어떤 땐데.

이런 딴딴한 생각들이 비난이란 갑옷을 입고 머릿속으로 마구 들어왔다. 어떻게 저럴 수가.


그렇게 한참 차 안에 앉아 픔과 아픔으로 떨다, 문득 요조 님의 문장이 불쑥 떠올랐다.

<말하는 몸> 인터뷰에서였던가.

환경을 위해 채식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미워질 때가 있다고,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내가 도덕적으로 무결하고 우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 같았다고, 하지만 나는 결코 완전무결해질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유연하고 말랑해지려 노력한다는 내용의 말씀이었다.

저는 그냥 너무 평범하고 하찮은 수준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난 이렇게 잘하는데 너넨 왜 이렇게 못해'라는 식의 성숙하지 못한 마음이 제 안에서 생기는 것을 느꼈어요. ... 페미니즘과 채식, 그게 나를 잡아먹을 만큼 거대하게 만들어서 타인과 세상을 필요 이상으로 너무 미워하지 않도록 하자. '말랑말랑하다'는 말은 그런 의미인 거죠. [말하는 몸 2], 44쪽



나는 어느새 내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생각, 내가 너무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던 거다. 내가 무슨 권리로, 어떻게 감히, 타인을 판단하는가.

내가 하는 행동이 옳다, 나처럼 안 하는 사람은 그르다는 생각으로 상대의 서사를 무시해버릴 때 딴딴해진다. 그럼 결국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비난하게 된다.

 

나는 내 할 일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된다. 내 몫은 거기까지다.

딴딴하고 굳으면 부러지게 된다. 내가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위해 타인의 취향이나 의사를 존중하지 않게 된다. 타인을 책잡고 미워하게 된다. 완악해진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슬퍼하고, 함께 슬퍼하고...

이 일을 잊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되 함부로 잊지 않고...

감히 위로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되 아픔의 자리에 함께 서 있는 것....


아마도 그것뿐일 것이다.


감히 엎디어 쓴다

제발,

하늘의 위로를 이 땅에 덮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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