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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Nov 10. 2022

월경컵 예찬

뽀송뽀송 질의 삶

월경.

포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일생 수십 번에서 수백 번 겪게 되는 일.


나는 11살에 월경을 시작했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중학생 때 생리를 시작했으니 상당히 시작이 빨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초등학교 화장실 사정은 정말 열악했는데(지금도 그때 화장실을 떠올리면 토악질이 나올 정도다) 11살이 때맞춰 월경대를 갈고 깔끔하게 뒤처리 할 수 있는 환경 아니었다. 화장실 네 칸 중 두 칸은 문이 부서져 있었고, 한 칸엔 누군가의 대변 흔적이 낭자했으며, 그나마 쓸 수 있는 한 칸은 쉬는 시간마다 북새통이었다. 겨우 화장실에 들어가 월경대 간다고 미적미적하고 있으면 밖에서 "수현이는~학교에서~똥 싼대요~"하는 열렬한 놀림을 받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월경할 때가 되면 항상 아래가 척척하도록 월경대를 뭉개고 있었다. 집이 학교에서 5분 거리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바지 밖으로 샌 적도 여러 번이었다. 월경대를 몇 시간이나 안 갈고 있었으니 오래된 월경혈에서 악취도 났다. 그때 옆에 앉았던 짝꿍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무슨 냄새 안 나나?'하고 물었을 때 나 때문이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중학생 때부터는 월경혈 양이 갑자기 많아져, 가방에 월경대 대형을 상비용으로 들고 다녔다. 그러다 누가 소곤소곤 '얘 생리 터졌대'하면 '아 그래 여기 여기'하면서 무슨 비밀결사대처럼 월경대를 주고받곤 했다. 그렇게 월경대는 인생의 생필품이 되었다.


11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내가 쓴 월경대가 몇 개일까 계산해봤다. 임신 2번 했던 기간 약 2년을 빼면 21년. 매달 생리를 7일간 했다 치면 하루에 쓴 월경대 평균 6개. 그러면 최소 10,584개의 월경대를 써 왔다는 계산이 나온다. 월경대를 싼 껍질, 월경대 날개에 붙은 스티커 3~4개까지 합치면 삼만 장이 넘는 합성 플라스틱을 계속 써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비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생필품인데도 월경대 한 팩 가격 만원에 육박한다. 가격 부담도 만만치 않은데 안정성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대체 무슨 브랜드를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매 달 쓰레기통이 불룩해지도록 나오는 월경대를 처리하는 도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월경대 대용품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다. 탐폰은 어차피 플라스틱 쓰레기 나오니까 안되고, 탐폰 쇼크도 무섭고... 면 월경대만 쓰기엔 월경혈 감당이 안 돼서 자꾸 새고... 찾고 찾다 알게 된 것이 월경컵이었다.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 안전하고, 질 안으로 쏙 밀어 넣으면 수영도 가능하고, 아래에서 뜨거운 굴이 빠져나오는 것 같은 불쾌감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비닐 쓰레기 처리를 더 이상 안 해도 된다는 이점이 있었다. 다만 진입장벽이 높았다. 질 길이를 손가락을 집어넣어 재야 고(본인이 높은 포궁을 가졌는지 낮은 포궁을 가졌는지는 본인 손가락이 들어가는 길이에 따라 알 수 있다. 다만 포궁 높이는 월경할 때 달라질 수 있다) 길이에 맞는 월경 고른 뒤, 잘 접어 질 깊숙이 쑤욱 밀어 넣는 기술이 필요했다. 월경컵 접 방법도 진짜 많았다. c폴드니 라비아 폴드니 10가지에 육박하는 접기법이 있는데 그중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야 했다. 월경컵의 단단한 정도도 문제였다. 단단하기가 높은 컵을 사면 질 안에서 잘 펴지긴 하지만 방광을 압박해 아플 수 있고, 너무 부드러운 걸 사면 질 안에서 완전히 펴지질 않아 월경혈이 샐 가능성이 있었다. 월경컵 브랜드도 마흔 가지가 넘었던 데다(지금은 아마 더 많아졌을 것이다) 당시엔 대부분 해외직구로 구입해야 했다.

아. 월경컵을 상용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가.

한 달에 걸쳐 월경컵 브랜드별 길이, 모양, 단단하기를 엑셀로 그려 비교해가며 '공부'했다. 내 첫 월경컵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루나컵이었는데 아주아주 낮은 포궁 길이를 가진 나에겐 월경컵 끝 부분이 삐죽 튀어나와 쓰라렸다. 그다음엔 페미사이클이라는 넓은 종 모양의, 낮은 포궁 전용 월경컵을 썼는데 난 질 넓이가 아주 좁은 편이라 컵에 방광이 눌려 심한 방광염이 왔다. 그 후로도 월경 디스크, 루넷컵 등 다양한 월경컵 사이에서 나만의 골든컵을 찾아 헤맸다. 월경컵 사용한 지 6년 차인 지금은 메루나 컵에 정착해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매 달 피할 수 없는 이유로 비닐 쓰레기를 배출해야 한다면, 그런데 그 쓰레기가 완전히 분해되기까지 450년에 달하는 시간이 걸린다면 포궁을 가진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나야 애 낳고 나서 질 안에 손가락 집어넣는 게 아무렇지 않아져 월경컵을 자유로이 사용하고 있다지만, 막상 내 아이가 10대가 되어 월경컵을 쓰게 된다면 자기 질 탐방을 제맘대로 할 수 있을까. 질 입구가 다소 몸의 뒤쪽에 있으니 입구 찾는 것만도 쉽지 않을 테고 학교 화장실에서 월경컵에 든 월경혈을 비워 내고 씻고 다시 질 안에 넣는 일련의 일들을 맘 편히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며 플라스틱 장난감은 안 사려 하는 우리 첫째가, 매달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재활용 안 되는 비닐 제품을 한 무더기씩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마음을 가질까.

딸 둘을 가진 나는, 아이가 첫 월경을 시작할 때가 되면 아마도 예쁜 천이 덧대어진 면 월경대를 한 아름 사서 선물하지 않을까 싶다. 월경컵보다 사용에 진입장벽이 낮고 아토피를 가진 아이들 피부에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아니면 부드러운 을 끊어다 같이 월경대를 만들어봐도 좋겠지. 서로 무릎을 맞대고 본인이 쓸 월경대를 바느질해 만들어 보는 것도 나름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월경이란 일상적인 일이 조금 더 지구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월경혈을 처리하는 일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이 글을 썼다. 각자의 이유로 월경컵을 쓸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 삶에선 월경컵이 들어와 줘서 참 좋았다. 아래가 뽀송해졌고 질의 삶, 삶의 질이 올라갔다. 동시에 환경 보호에도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게도 됐다.


그래서 감히 해 본다. 월경컵 예찬을. 월경컵 쓰기를 아직 시도해본 적 없는 분들께 영업해본다. 진짜 좋아요 좋아. 한 달만 꾹 참고 써보면 신세계가 열린답니다. 골든 컵 찾으셔서 뽀송 뽀송한 질의 삶 살아보시길 바라봅니다.

  

 


이미지 출처: 메루나 월경컵 공식 홈페이지(https://www.me-luna.eu/epages/63898218.mobile/?ObjectPath=/Shops/63898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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