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현씨 Nov 23. 2022

낡은 몸과 화해하기-요가 편

하누만 아사나가 와 주었다

이틀째 비다. 공중 습도가 올라가면 몸이 덜 삐걱거리고 윤기가 나야 할 것 같은데 왜 더 쑤시고 아픈 건지 진정 궁금하다. 여기에 월경통까지 겹쳤다. 이렇게 꺼칠거리고 성난 몸과 화해는 방법 중 하나는 요가를 하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 원장님은 근력 운동 강도가 높은 코스를 선호하신다.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를 팔이 쫙 펴질 때까지 벽에 대고 밀게 하시거나, 머리 서기, 어깨서기를 30분 가까이 견디도록 하실 때도 있다. 그래서 요가원 가기 전엔 항상 좀 떨린다. 오늘의 수련은 얼마나 무서울까 싶어서. 그래도 꼬박꼬박 가는 이유는 그런 강도 높은 수련을 하고 나면 허리 통증이 확실히 덜해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요가에선 이렇게 말한다. 사람마다 별 노력 없이 잘 되는 자세가 있고 애를 써도 안 되는 자세가 있다고. 어떤 자세를 하고 싶어서 안간힘을 써도, 팔이 짧거나 근육이 너무 두꺼우면 끝끝내 완성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고 들었다. 반면 어떤 자세는 체형에 따라 공들이지 않아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고도 한다. 나에겐 전굴 자세가 그렇다. 큰 아픔 없이 배가 허벅지에 붙고, 이마가 발목에 붙는다. 하지만 후굴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 골반을 미는 시작 동작에서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아무튼 오늘 수련의 클라이맥스는 하누만-원숭이 자세 완성에 있었다. 우리 원장님 수련엔 기승전결이 있는데, 절정 부분에서 해낼 동작을 위해 30분 정도 빌드업을 하신다. 시작부터 수리야 나마스까라 7세트, 부장가, 아도 무카, 비라바드라 아사나를 몰아웜업이 됐다 싶으셨는지 하누만 자세 잡기에 들어갔다. 골반 평형 맞추고-뒷다리 고정-앞다리를 조금씩 밀어 앞으로 최대한 편 후-골반 고정-뒷다리 마저 밀기. 평소 나는 골반 평형이 안 맞아 자꾸 쓰러지고, 햄스트링이 찢어질 것 같이 아프면서 땀을 비 오듯 흘리곤 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좀 덜 아팠다. 하누만 같이 다리 찢는 동작은 월경 중에 더 잘 된다고들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앞다리 뒷다리가 쫙 펴지면서 드디어 골반이 바닥에 닿았다. 여전히 진땀이 났지만 원장님이 골반 고정해 주신 자세에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드디어 요가 매트와 다리, 골반이 한 몸이 되었다. 기쁘다. 기뻤다. 이렇게 기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혼자 깨방정을 떨었다. 요가 시작한 지 4년째. 남들은 1년 차에 되는 하누만을 이제 완성하긴 했지만 요가는 경쟁이 아니니까. 사람마다 몸이 다 다르니까.

그렇게 하누만 아사나가 오늘 나에게 와 주었다.

여기서 팔 들고 후굴까지 하는 완성 동작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어제는 내 몸에 느는 불일치감때문에 사무치도록 슬펐는데 오늘은 그, 낡은 몸 때문에 기뻤다.

요가는 계단식 성장인지 계속 안되던 아사나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 주기도 한다.

오늘은 요가 덕분에 몸과 조금쯤 화해하고 짧게나마 웃을 수 있었다.


안 되던 게 되는 날도 있다.


나마스테.









이미지 출처: B.K.S. 아헹가, [요가 디피카]

매거진의 이전글 아, 월경이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