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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Dec 06. 2022

잘생기고 친절한 사람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

민서영 작가님의 [썅년의 미학 플러스]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잘생긴 남자가 말없이 무해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아기 고양이를 보는 듯한 안락함을 느낀다. 내 마음에 강 같은 평화가 찾아온다.'




일상생활에서 잘생긴 사람을 보는 것 흔치 않은 일이다. 이목구비의 가지런함, 시의적절하게 다듬어 단정한 머리, 고르게 잘 깎아 청결해 보이는 손톱, 보풀 없이 정결한 옷차림을 갖춘 남성은 특히 이 시골에서 보기 어렵다. 아니, 서울 살 때도 일반인 중에 와, 잘생겼다 싶은 사람 한 번도 본 적 없다. 잘생긴 사람은 넷플릭스에만 있는 거구나 생각하며 자라온 내 인생.


그런데 얼마전 느닷없이, 살아있는 잘생긴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찾아왔다.


자주 가는 동네 도서관 종합자료실에서 신간 코너를 기웃대고 있는데 저 멀리서 후광 같은 게 비치는 거다. 대충 슥 봐도 느껴지는 잘생김의 기운. 그냥 누가 봐도 잘 생긴 사람이 서가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새로 온 도서관 인턴 같았다. 짧게 잘라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 하며 190에 육박할듯한 큰 키 하며... 무엇보다 보풀 하나 없이 깔끔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 니트 밖으로 드러나는 근육질의 대형견미... 수영선수마냥 떡 벌어진 어깨... 마스크가 크게 느껴질 정도의 작은 얼굴과, 마스크로 가려진 부분에서도 느껴지는 시원시원하게 뻗은 이목구비.... 햐. 잘생김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냥 잘생긴 걸로 그쳤으면 내가 이렇게 글 쓸 정도까지 오래 기억하고 있진 않았을 텐데 그는 친절하기까지 했다. 내가 희망 도서 대출 때문에 사서 선생님을 찾아 헤매고 있자 그는 먼 곳에서도 이용자의 어려움을 느끼고(!) 나에게 달려와(!) 뭘 도와드릴까요 물으며 해사하게 웃었다. 와. 갱상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만들어내는 이 친절 가이 어쩔 거야. 그대에게 유죄를 판결합니다. 땅땅땅!

하지만 그는 (아마도) 인턴인지라 희망도서를 함부로 꺼내올 수 없었다. 대신 내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사서 선생님을 찾아 어디론가 막 뛰어갔다. 하. 친절한 유죄 인간이여. 미천한 날 위해 뛰기까지 하시다니요.

어쨌든 그는 동분서주 뛰어 머나먼 어딘가에 있던 사서 선생님을 모셔와 내 책을 무사히 대출해주었다. 책을 건네줄 때 다시 한번 지어주는 그의 유죄 미소. 한번만 더 웃어줬다면 나도 모르게 그를 붙들고 우리 글쓰기 클럽 들어올 생각 없냐고 물어볼 뻔했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른 책을 대출하려는데 대출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켜서 삐삐삐 소리가 나자, 먼데서도 그 소리를 듣고 그가 또 달려왔다. 달려오느라 들썩이는 어깨, 태평양같이 넓던 흉근.. 기계를 눌러보더니 '아, 이제 되네요'하며 다시 나를 향해 웃어주는 그의 미소... 더 쓰면 변태 같을까 봐 그만둔다(그의 외견에 대해 열 줄은 더 쓸 수 있다). 아무튼 그는 참 빛나고 독보적으로 친절한 존재였다. 난 기본적으로 텐션이 로-우한 사람인데 그의 잘생김과 친절이 너무 달아 혈당 스파이크 치는 줄 알았다. 남들이 봤을 땐 그냥 '어떤 아줌마가 도서관에서 책 빌렸네' 정도로 정리되겠지만 나에겐 인생에서 아주 즐거운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친구들에게 홍보도 잔뜩 했다. 마음이 우울하고 슬플 땐 00 도서관 3층 종합자료실로 가보시라. 갱상도에서 볼 수 없는 훈남이 계신다. 그를 보기만 해도 절로 텐션이 업 될 것이다, 하면서.


배우자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 시골에 웬 훈남이 있더라, 멍뭉미가 넘치더라, 친절하기까지 하더라 하니까 배우자가 오, 잘생기면서 친절하기 쉽지 않은데, 하면서 같이 흥분해줬다. 크크.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 어쩐다 평소에 그리 외치고 다녔으면서 동네 훈남을 보고 이리 글까지 쓰다니 나도 참 나다. 새삼 반성...


아무튼 잘생기고 친절한 사람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는 아직도 도서관 3층에서 특유의 잘생김과 친절함으로 이용자들을 널리 이롭게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잘생기진 못해도 최소한 친절한 사람은 되어야지, 뭐 이런 엉뚱한 다짐으로 결론을 갈음한다.  



+그건 그렇고, 슈룹에서 성남 대군 역을 맡은 문상민 배우, 보면 볼수록 잘생겼다. 손도 길쭉길쭉 어찌 그리 길고 고운지. 저렇게 잘생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자신의 잘생김을 만끽하고 충만하며 만족스러운 마음을 가질까?

 막 찍 듯한데도 잘생김을 숨길 수 없는 그의 일상 사진을 보면 진짜 궁금해진다. 정우성의 말처럼, 어떤 기준 이상으로 확 잘생겨버리면 매일이 짜릿하고 새로울까?

잘생긴 사람들이 좀 대답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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