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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Dec 15. 2022

자식이 눈덩이를 던졌다

아, 무심하고 얄미운 자여

그저께도 어제도 오늘도 눈이 온다. 이놈의 산골짜기. 싸라기 같은 눈도 쉼 없이 오니 온 사방에 쌓인다. 눈 소식 들었을 때 신나는 사람은 어린이고 걱정하는 사람은 어른이라는데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어른이 되었나 보다. 집 앞에 눈 치울 걱정. 차 어떻게 끌고 가나 걱정. 거기에 걱정 하나가 더 늘었다. 자식한테 눈으로 뚜드려 맞지 않을까 걱정.


첫째 녀석이 학교에서 지 친구들이랑 눈싸움해본 게 어지간히도 재밌었나 보다. 늙고 아픈 에미한테 자꾸 눈을 던진다.

피하거나 반격을 가하면 더 재밌어한다. 그럼 결과적으로 더 오래, 더 많이 눈덩이 공격을 당해야 한다.

맞는다. 피하지 않고 맞는다. 자식이 일방적으로 던지는 눈에 뚜드려 맞고 또 맞는다. 그저  재게 놀려 최대한 빨리 집으로 들어가려 애쓸 뿐. 눈에 뚜딜겨 맞으며 겨우 집에 들어와 거울을 보니 검은 패딩 눈가루로 하얘져있다.

 

그렇게 눈싸움에 맛이 들린 초딩은 유치원생인 동생에게도 눈을 던지기 시작했다. 둘째가 요리조리 피해도 보고 반격도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아직 뒤뚱거리며 걷는 5살이, 세상 무서울 거 없는 8살 초딩을 어떻게 당해내겠는가. 언니가 던진 눈에 호되게 당하고 사흘 째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 억울하고 분하고 아파서 눈물을 폭포수처럼 흘리는 둘째를 안고 첫째를 대충 나무랐다. 눈놀이하는 것도 한 때지 싶어서.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쉼 없이 내린 눈이 담장마다 소복이 쌓였다. 1시쯤 첫째 하교 마중을 나갔는데 이놈이 그걸 놓칠 리가 없었다. 담장을 쓸어 쉼 없이 눈을 던졌다. 하하, 그래, 너도 당해봐라 하고 몇 번 같이 눈을 던졌더니 재밌어서 아주 야단이 났다. 그러곤 점점 눈을 크고 딴딴하게 뭉쳐서 던진다. 언제 손이 이렇게 야물어졌을까. 패딩 입은 엉덩이에 몇 번 맞았을 뿐인데 엉치뼈가 얼얼하다. 그새 눈 던지기 특훈이라도 받은 건지. 사람 다리 아래로만 던지고 머리 쪽으로는 절대 던지지 말라고 당부하고 잠시 눈싸움 삼매경에 같이 빠져줬다. 거의 나는 맞아주고 저만 던지는 일방적인 파이트였지만.


그러다 첫째가 일을 쳤다.

내가 뒤돌아서 옷을 터는 동안 어느새 눈을 꼭꼭 눌러 커다란 눈 뭉치를 만들었던 거다. 그리고 내가 뒤돌자마자 확 던졌는데 조준이 좀 높았던 모양이다. 왼쪽 눈에 퍽, 하고 돌덩이 같은 게 내리 꽂히더니 별이 보였다. 눈앞이 번쩍번쩍했다. 눈이 떠지지도 않고 머리까지 찌릿찌릿했다. 놀람과 아픔이 덮쳐 숨까지 안 쉬어졌다. 길바닥에서 눈알을 감싸 쥐고 한참 몸을 웅크리고 있으니 아픔이 조금씩 물러가면서 그 자리를 화가 채웠다. 첫째는 어쩔 줄 몰라하며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를 연신 외쳤다. 머리로는 그래,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멍들 것처럼 눈이 욱신거리니 결국 감정이 이성을 넘어섰다. 화를 못 참고 소리를 빽 질렀다.  

"야! 눈 눈 던지면 어떡하냐? 너랑 다신 안 놀아!"

(지금 생각해보니 새삼 유치한 대사 . .)

그러고 집에 먼저 휙 들어와 버렸다.

첫째 녀석은 처음에만 좀 내 눈치 보면서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만화책에 빠져들어 모든 걸 잊었다.


아. 이 무심함. 이 무신경함.

에미가 아프든 화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첫째의 태무심한 태도는 늘 경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며 화나는 마음을 다스려보려 하는데 잘 안 된다. 부글부글. 거울을 보니 눈 가가 멍들 것처럼 색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누가 보면 17:1로 싸우고 다니는 줄 알겠다.

어휴.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화를 낼 때도 품위를 잃지 않는 게 올해 세운 내 목표였는데. 

다 망했다.

자식은 지금도 브레드 이발소 책을 들고 낄낄 웃고 있다.

진짜 개빡친다. 집에 있는 만화책 싹 끌어모아 도서관에 반납해버려야겠다. 얄미운 내 자식, 내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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