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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an 02. 2023

싸이월드 갬성

시간의 웜홀을 통과하며 얻는 것

남들이 싸이월드 복구한다며 20년 전 사진첩을 업로드한다 어쩐다 할 땐 심드렁했다. 싸이월드에 별 아름다운 추억이 안 남아 있을 것 같아 그랬다. 그래도 왠지 아쉬워 복구 신청만은 해 뒀다.

 

그러다 오늘 새벽 짧은 꿈에, 16년 전 좋아했던 사람이 나왔다. 얼굴이며 목소리가 어제 만난 듯 생생했다. 꿈에서 깨어나니 그때 그 사람과, 그 사람과 함께했던 내 모습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마침 싸이월드 복구가 끝났다는 알림이 떴다. 그래서 싸이월드 갤러리를 오래 뒤적다. 그 사람 얼굴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싸이월드뿐이었기 때문. 우리는 페이스북이 유행하던 시기까지 만나지도 못했다.

불안했던 20대 초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람한테 받았던 사랑이 너무 컸다. 부모도 나에게 해주지 않았던 조건 없는 인정을 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못난 부분까지 감싸줬던 기억들이 짙게 남아 새삼 가슴이 저렸다.


싸이월드 사진첩에 박제되어 있던 그의 사진은 딱 2장이었다. 그때는 싫다고 생각했었던 특유의 옷차림이나 긴 머리가 지금 보니 멋져 보였다. 그도 나도 참 젊었다. 뭘 해도 예쁠 시절이었다. 그땐 그걸 몰랐다.

 

21살의 나는 주변 상황이 여러모로 불안정해 예민해져 있었고 자주 이기적으로 행동했는데 그 사람은 내 그런 점을 참고 돌봐주었다. 악덕 사장에게 아르바이트비를 뜯기고 몰래 울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아내서 오래 옆에 앉아 있어 주고, 함께 해결해주려 애썼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무조건 내 편을 들었다. 사귀기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 줬다. 본인도 여러 어려움을 지닌 20대 초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 서로 돈이 없었던 시절에도 내가 여윳돈이 없는 것 같으면 무조건 100만 원 200만 원 같은 큰돈을 빌려주려 했다. 이유 없이 누군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 그 어려운 일을 어린 나이에 해낸 그 사람이 지금까지도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타인의 인정을 오롯이 받을 줄 모르는, 마음이 병든 상태여서 계속해서 그의 애정을 의심하고 시험하려들었다. 그가 멀어지는 것 같으면 불안해서 내 쪽으로 당겼다가도 그가 다가오는 것 같으면 부담스러워하며 밀어냈다. 한 번도 못 받아 본, 순수한 애정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만한 뜨겁고 큰 것을 덥석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건강치 못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참 모진 짓을 많이 했다. 그도 사람인지라 1년 정도 나의 매몰참과 제멋대로인 행동을 견디다 결국 떠나갔다.

 

그리고 잊고 살았다. 삶이 힘들 때마다 그 사람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연락할 방도도 없었다. 싸이월드도 폭파되었기에 그에 대한 모든 걸 잊었다.


그러다 오늘 그의 꿈을 꾼 것이다. 너무도 생생하게. 꿈 속에서 나는 마흔에 가까운 지금의 모습이었으나 그는 여전히 젊었다. 난 그의 젊은 모습밖에 모르니까. 그의 앞에 엎드려 애원했다. 제발 다시 만나 달라고. 하지만 꿈속의 그는 이미 결혼할 사람이 있다는 설정이어서 내 간청을 차갑게 거절했다. 뒤돌아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꿈속에서 쳐 울었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눈물 콧물 흘리고 있는데 누군가 세차게 어깨를 흔들었다.


"엄마. 엄마. 나. 쉬."


아.

꿈속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비련의 여주인공이었는데. 잠을 깨는 순간 5살 자식의 쉬를 닦아줘야 하는 아줌마-현실로 점프했다. 그 간극이 너무 커 오늘 내내 16년 전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의 웜홀을 통과해 내 의식을 현실에 안착시키는 데 애를 써야 했다.


현실로 정신을 끌어오려 애쓰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나는 그 사람이 그리운 걸까. 아니면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젊은 시절의 내가 그리운 걸까.


막상 그 사람을 지금 다시 만난다면 서로의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나는 나대로 (외모부터) 너무 많이 변해버렸고, 그 사람도 세월을 지내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게다. 대머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의 삶이 겹쳐졌던 시절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 둘 사이에서만 흘렀던 고요한 시간들,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를 다시 나누고 싶다. 그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을 지금의 쓸쓸한 삶에 불러와 따스함을 느끼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욕심이란 것을 안다. 백일몽에 불구하다는 것을 안다. 싸이월드 갬성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싸이월드 복구시켜서 사진첩을 둘러본 모든 사람들이 겪었을 감성팔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어쨌든 나는 살아서는 다시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 점이 슬프기도 하고, 안심되기도 한다.

내가 그를 못 알아볼 것이 두렵고 그가 날 못 알아볼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 싸이월드를 둘러봤다.

시간의 웜홀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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