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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an 27. 2023

어떤 책이 출판되는가

이상만 높고 현실은 시궁창이라도

얼마 전 트위터에서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환경에 '이상은 높은데 현실이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예시로 적힌 것을 읽었다. 아! 그래서 내가 우울하구나! 무릎을 탁 쳤다.


지금까지 원고 2개를 탈고해 200군데에 가까운 출판사에 투고했고 스무 군데 정도에서 거절 메일을 받았다. 아니 자존감이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 해도 매일같이 거절 메일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굳건할 수 있을까? 새 메일이 왔다는 알림 창을 보면 기대와 불안으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그러다 정중한 거절 메일인 걸 확인하면 절망하길 수차례.


작가가 되길 원하는, 아니 갈망하는 이 이상이 너무 높은 걸까.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인가. 영영 작가가 못 될 사람이, 사실 시궁창에 뒹굴고 있는 사람이 절대 닿지 못할 높은 곳에 손을 힘껏 뻗치고 까치발을 들고 서 있는 건가. 언제 들고 있는 까치발을 내려놓을지 몰라 계속 발끝에 힘을 주고 비틀대고 있는 걸까. 내가 나를 몰라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몰라서 희망 없는 동굴 속을 헤매고 있는 건가.


오늘은 꼭 함께하고 싶었던 출판사에서 정말 정중하고 정성 어린 거절 메일을 받았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도 핵심을 꼭 찌르고 있어 가슴이 무너졌다.

내용은 대강 이랬다.

"저희 출판사는 에세이 출간을 고려할 때 다음 내용을 고려합니다.

1.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가

2. 밑줄 긋고 싶은 곳,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많은가

3. 이 작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인가

1번과 2번은 기성 작가들과 겨루었을 때 신인 작가들이 획득하기 어려운 경쟁력입니다.

그렇다면 3번이 신인 작가들에게 중요하겠죠. 이 작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개성적인 주제 혹은 관점이 드러나야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미 서점에는 작가님 원고와 비슷한 주제의 책들이 많이 나와 있는 상태입니다.

작가님께서는 개인적으로 무척 특별한 이야기를 다루신 거겠지만, 독자들에게는 그렇지가 않거든요.

비슷한 주제의 책들이 있을 때 작가님 책을 집어 들게 하려면 눈에 띄는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부분을 언어화시킨 문장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내 책을 집어 들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벽에 부딪혔다. 대중에게 어필할 만한 특별한 부분을 끄집어내어 글 쓸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자 배우자가 다가와 물었다.

당신이라면 어떤 책을 사고 싶냐고.

나는 책을 이미 많이 내서 필력이 검증된 유명한 작가 책만 사는 사람이다. 애초에 나부터 내 책을 안 살 사람인 것이다.


어쨌든 수십 차례 거절메일을 받으면서 깨달은 부분은 있다. 제목이 화끈하든지, 소재가 특별하든지, 문장이 탁월하든지 해야 한다는 것. 한눈에 탁 띄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 말하자면 제목에, 기획안에, 글에 '엣지'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부족한 나를 견뎌줄 참을성이 탁월한 편집자를 만나 조금 방향을 틀어 내 엣지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만.

앞으로 그러면 몇 번의 거절을 더 견뎌야 할지.


그래도 책상에 앉아 또 한 번 원고를 고치고, 문장을 다듬고 투고 메일을 보낼 출판사를 검색해 본다. 이상이 높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오직 투고하고 또 투고하는 것뿐이기 때문에. 닿을지 모르지만 다시 시작해 본다.


커서가 깜빡인다. 무엇이라도 쓰라고 마음을 재촉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쓴다. 내 이름을 책등에 새기고 싶어서.

그게 뭐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책이 내 삶을 조금이나마 더 나은 어딘가로 데려가줄 것 같아서.

그래서 오늘도

뭐라도 쓴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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