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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an 30. 2023

열대의 섬으로 왔다

바람이 근심을 흩어주기를 바라며

한국에 있는 모든 마음 아픈 것들과, 떼어낼 수 없는 남루한 부분들을 멀리 하려 필리핀으로 떠나왔다. 불안증세가 점점 심해져 배우자와 상의해 결정한 일이었다.

10년 전 오래 머물던 곳이라 내가 아는 친숙한 낯섦을 기대했는데 이젠 완전히 모르는 곳이 되었다. 눈에 익었던 식당과 마사지숍은 코로나가 모조리 휩쓸고 지나갔다.


여기 와서도 나는 한국의 삶을 떼어놓지 못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출판사의 거절 메일을 읽고 또다시 마음이 무너진다.


한국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마음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나는 수영장이 있고, 야자수가 있고, 망고가 있는 열대의 섬에 있다. 그런데 마음은 한파가 내린 내 고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에 마음을 두지 못한다. 항불안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룬다.

여기로 떠나오면 마음의 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난 여기서도 여전히 아이들의 화장실을 찾아다니고, 편식이 심한 둘째 때문에 고민하고, 때때로 메일을 확인하며 괴로워진다.


제발,

열대의 바람이 나의 근심을 조금이라도 흩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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