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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Feb 01. 2023

여기선 말하지 않아도 된다

깊고 푸른 바다

오늘은 일부러 파도가 높은 곳으로 바다 수영을 나갔다.


깊은 물에선 소리가 사라진다.

앞사람이 힘차게 차고 나아가는 핀에서 나오는 잘디잔 공기방울과 파도가 일으키는 물결만이 느껴질 뿐이다.

물고기도, 소라게도, 산호초도 말이 없다. 성게도 불가사리도 고요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간도 스노클이나 레귤레이터를 물고 있으니 말을 할 수가 없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물속에서는. 조용히 손과 발을 뻗었다 굽혔다 하며 파도에 휩쓸릴 뿐이다.


발리카삭이라는 거북이 서식지에서, 고요히 바다 깊은 곳에 있는 거북이를, 천천히 네 발을 휘저어 본인만이 아는 어떤 곳으로 나아가는 거북이를 봤다. 마음만 먹으면 손 닿는 곳에 그의 이끼 낀 등이 보였다.

왠지 손을 잡고 그의 공간으로 함께 나아가고픈 마음. 어둡고 푸른 깊은 바닷속으로 팔을 휘적휘적 저어 거북이가 멀어질 때 느껴지는 조그만 슬픔.



오랜 수영 후 물 젖은 몸으로 고운 모래 위에 벌렁 드러누우면 바람이 비단결같이 불어온다. 바다 수영에 지친 사람들이 누워 있는 야자수 그늘마다 커다란 개들도 철퍼덕 누워 있다. 손을 내밀면 착한 눈을 껌뻑이며 등을 토닥이는 걸 허락해 준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서로 익숙지 않은 언어 꼭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많은 부분 몸짓과 표정으로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 부분도 좋다.


여행지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안녕, 좋은 아침 혹은 좋은 저녁이야, 잠시 실례할게, 고마워, 괜찮아, 정말 고마워, 이 문장으로만 하루를 메우면 된다.

그 말들만으로 충분하다.



오늘 나의 마지막 말ㅡ숙소 직원과: 굿 이브닝. 실례지만 물 한 병 줄래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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