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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Feb 04. 2023

구걸하는 아이들과 핑크색 우의

세부엔 연일 비가 온다. 아침엔 쨍하게 따가운 햇살이 비쳤다가 오후가 되면 갑자기 투둑투둑 비가 듣는다. 


지금 머무는 곳은 세부 시티 한복판에 새로 생긴 호텔인데 그래서인지 인테리어가 아주 힙하다. 특히 루프탑 풀 바가 유명한데, 누워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라탄 침대 겸 의자 같은 것이 있어 자정까지 술 마시며 누워 있다 수영하다 야경을 보다 할 수 있다.

호텔 앞엔 커다란 쇼핑몰이 있다. 쇼핑몰은 10시에 여는데 9시 반부터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을 섰다가 10시 땡 하면 들어간다. 아침부터 까지 쇼핑하는 사람들 ㅡ 현지인 반 외국인 반 ㅡ 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오늘, 저녁을 쇼핑몰 안 음식점에서 해결해 볼까 하고 호텔을 나서는데 비가 토토도도 정도가 아니고 투두두두두두두투두 왔다. 물 한 방울이라도 옷에 묻으면 난리가 나는 6살 우리 둘째는 우의를 지 것만 한국에서 챙겨 왔었다. 모자 부분에는 미키 모양 귀가 동그랗게 달려 있고 밑단엔 프릴 달 드레스 모양의 아주 예쁜 우의였다. 그 우의를 입고도 발에 물이 들어가네, 흙탕물이 고였네 어네 하면서 쇼핑몰까지 는 5분 동안 끊임없이 짜증을 냈다. 까탈 좀 그만 부리라고 둘째랑 실랑이를 벌이는 중에, 비를 다 맞아 옷이며 머리가 홀딱 젖은 아이 셋이 6차선 도로를 가로질러(그야말로 목숨을 건 무단횡단이었다)  우리에게 왔다. 그리고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머니, 머니, or 초콜릿'이라고 말했다.


도시로 나오면서 주 어린아이들이 이나 모자 같은 걸 들고 도로가에서 아슬아슬하게 차를 세우 물건을 팔거나 구걸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애들을 만날 때마다 돈을 주는 게 맞는 지, 그러지 않는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또, 이 아이가 구걸한 돈은 본인이 가지는 건지, 혹은 어른에게 다 빼앗기는 건지. 당장 저녁 사 먹을 돈은 있는 건지.


 어떤 여행 가이드에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이나 돈을 주지 말고 치약이나 공책 같은 것을 준비했다가 주라는 안내가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 이내 아이는 머쓱해하면서 맨발로 멀리 뛰어가버린다. 신발을 신은 아이가  한 명도 없다. 햇빛에 달구어져 뜨거운, 혹은 비가 와서 흙탕물이 고인 6차선 도로를 맨발로 뛰어 건넌다.


구걸하는 아이와 헤어져 핑크색 미우의를 입 옷이 보송보송한 둘째와 환한 불빛이 켜진 쇼핑몰에서 한 그릇에 만원 가까이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루프탑 바의 불빛이 번쩍이는 호텔에 묵으면서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땋은 아이를 데리고 번쩍이는 샹들리에가 장식된 쇼핑몰로 들어서는 내가... 부끄러웠다.

쇼핑몰이 너무 환해서 도로 가는 깊은 어둠에 묻힌 것처럼 보였다. 그곳에 비에 젖은 아이들이 맨발로 서 있었다.


구걸하는 아이들도 저 또래 아이를 데리고 있는 나 같은 사람한텐 잘 안 온다. 관광객으로 온 또래 애에게 돈을 달라고 하기가 어색해서인 것 같다.


어둠 속에 눈만 빛나는 애들을 보며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언어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수치심, 부끄러움, 반성, 혼란, 모호...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지 알 수 없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가 마구 뒤섞여 불안과 우울이 몰려왔다.

돌을 씹는 것 같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그 어두운 찻길에서 달리는 차를 온몸으로 세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팁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노래는 높고 크고 빠르고 맑고 무질서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아무 데도 가닿지 못했다. 사람들의 손사래 세례, 가라고 쫓아내는 손길만 받았을 뿐.


삶에서 늘 너무 많이 바라고 너무 많이 가진 게 아닌가 생각했왔었다. 하지만 오늘만큼 그런 마음을 절절히 느끼진 못했다. 오히려 내 삶에 대해 자주 불평하고 못마땅해했다.

구걸하는 아이들을 감히 불쌍해하거나, 그에 비해 내 삶이 낫다고 대리만족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마음을 언어로 정제시키지 못하고 있다. 다만 거칠게 정리해보자면..

너무 많이 가진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가진 것을 나눌 줄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높고 화려한 곳에 앉아 불평하면서 타인의 삶을 볼 줄 모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더러운 하수구 물이 인도에 콸콸 흐른다며 투덜거리는 둘째 손을 잡고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리핀은 여러 나라에 의해 오래 지배를 받았다고.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을 빼앗겼다고. 아직도 나라 안에서 전쟁이 일어나 있고, 그로 인해 가난이 계속되고 있다고. 나라가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저렇게 아이들이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온 거라고.

우리나라도 전쟁에 져서 일본에 지배받았을 때가 있었고, 전쟁이  끝난 뒤 우리나라 모습도 이랬다고. 아이들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었다는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해.

아니,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한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해.

부족한 것, 불편한 것을 조금도 참지 못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 되어선 안 돼.

그건 부끄러운 일이야."


나 자신에게 한 땀 한 땀 새기듯 천천히 자식에게 말해주었다.

얼마나 내 마음이 전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둘째는 불만을 늘어놓던 것을 멈추고 내 얼굴을 오래 바라보더니 말했다.


- 엄마.

엄마와 같이 지금 여기 있을 수 있어서 감사해.


- 응. 엄마도 감사해.


그러곤 손 꼭 잡고 호텔에 돌아와 따듯한 물에 먼지를 씻기고 같이 누웠다.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어떻게 사는 게 바로 사는 건지 아직도 모른다.

다만 이 마음, 부끄러워할 수 있는 마음,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좀 더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잃지 않고 싶다.

내일도 구걸하는 아이들을 만날 텐데 여기 있는 동안 그 아이들과 [호구 관광객 ㅡ 성가신 구걸하는 애들] 같은 만남으로만 맺어지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맞을지 이 밤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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