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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Apr 27. 2023

엄마라는 타이틀

강해졌다, 역설적으로

나는 '엄마 됨'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는 쪽이 옳겠다. 밖에 나가면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지우려 하기 급급했으니까.

어떻게든 '엄마'같이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에서도 배우자나 애들 얘기보다 내 이야기를 하려 했고 도서관에 가도 어린이 자료실보다 일반자료실 신간 코너 앞에 더 오래 서성였다.


나와 '엄마'는 먼 단어였다. 이상적인 엄마로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멀어지려 애썼다. '다른 집 엄마'들처럼 요리를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돌보지도 못했다. 세상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엄마상과 나는 아주 동떨어져있었다.

애들한테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하고 물어보면 '책 읽는 거 좋아하는 사람, 글 쓰느라 바쁜 사람, 맨날 약속 있는 사람'이라 답한다. 청소를 잘한다거나 아기를 잘 돌본다거나.... 전형적인 엄마상과는 거리가 먼 대답이다. 그러니까 부너미 강연에서 받은 질문인 '엄마가 된 후 더 강해졌느냐'는 물음은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 카테고리에 들어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마쉬 주최 <여성의 날> 강연에서 안성은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새롭게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었다.

엄마는 원래부터 강하지 않았어요. 오랜 시간 홀로 시간을 견디며 훈련되어 결과적으로는 강해졌지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엄마는 강합니다.


생각해 보니 '엄마'라는 타이틀을 갖지 않았었다면 이렇게 '전형적인 엄마상'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

욕실 청소를 하는 대신 책을 읽었다. 육아서를 필사하는 대신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필사했다. 애들 일정보다 내 요가 수련을 우선순위에 뒀다. 애들 밥 남은 거 대충 물 말아먹는 대신 혼자 먹는 점심상을 정성껏 차려 먹었다.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버렸다.

욕실청소나 육아서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갖고 있던 '엄마'라는 틀을 깨기 위해 노력했던 부분을 적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결혼하기 전보다, 아이 낳기 전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고 필사하게 되었고 '나'라는 사람을 더 건강하고 단단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나라는 인간이 엄마가 됨으로써 이루어낸 것이다.


결국 전형적인 엄마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엄마라는 범주는 사람이라는 더 큰 범주의 하위 항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개별적이고 다양하며 측량할 수 없는 것이듯 엄마 또한 전형적일 수 없으며 고정될 수 없는 존재이다.


나는 확실히 엄마가 되고 나서, 역설적으로, 강해졌고 비정형화되었으며 세분화되었다. 엄마라는 측면을 삶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좀 더 다양한 하위분류를 갖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네, 그렇습니다. 저는 엄마가 되고 나서 더 강해졌어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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