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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May 07. 2023

아플 때 하는 대청소

나는 아플 때 더 많이 움직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청소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청소병이 도졌다. 대상포진 때문에 경련이 이는 다리를 붕대로 잡아맨 채 서랍을 뒤집어엎어 안 입는 옷을 정리하고 방방마다 청소기를 밀고 물걸레질을 했다. 흐트러진 책장까지 높이별로 정리하고 나니 식은땀이 나면서 기운이 쭉 빠졌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대체 나는 왜 이럴까.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 아프고 늙고 둔해지면서 남들한테 민폐 끼칠 일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

지난달, 독감걸려서 열이 펄펄 끓는데도 바닥을 밀대로 밀고 이불 빨래를 했다. 그리고 배우자에게 끊임없이 사과했다. 나 때문에 주말에 독박육아해서 어떡해. 내가 아파서 너무 힘들지. 정말 미안해.




지난 상담시간에 몸이 아픈 동안 일어났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상담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아플 때 배우자가 나를 돌보면 어떤 마음이 드냐고. 나는 '몸 둘 바 모름, 미안함, 죄송함'을 말했다. 감사한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오직 송구스러움 뿐.

나는 내 기능을 다하지 못해 배우자에게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겨질까 두렵다. 쓸모없다고 여겨져 버림받을까 봐 두렵다. 그래서 아파서 누워있게 되면  자꾸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린다.

대상포진이 걸렸다는 걸 알게 된 날 나는 침대 커버를 싹 걷어 빨았걸레를 빨아 거실을 두 번 닦았고 욕실 벽 전체에 락스를 뿌려 솔질을 했다. 급격히 불안이 몰려와 잠들지 못하고 글을 두 편 썼다. 수업도 일부러 보강을 잡아 연강했다. 평소보다 더 몸을 혹사시켰다. 아프면 쉬어야 하는데. 쉬어야 병이 낫는데. 병든 상태가 두려워 멀쩡한 때보다 기괴한 방법으로 '기능적'으로 있으려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한 주만에 낳을 질염과 대상포진은 지금 2주째 낫지 않고 질질 끄는 중이다.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의 향연... 더부룩함은 덤이다.

나는 아직도 '100점 맞아오지 못하면 혼나는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다. 오직 기능으로만 사람을 보고, 나를 본다.

내일은 2주 만에 하는 심리 상담날인데. 2주 동안 나아진 게 없다. 스스로를 한 번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아플 때, 내가 쓸모없는 것 같을 때, 제기능을 하지 못할 때, 남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짐이 될 때 느끼는 두려움이 너무 크다. 지금도 그 두려움을 어쩌지 못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다 쓰고 나면 바닥을 다시 닦을 것이다. 아이고. 나도 내가 참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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