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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un 21. 2023

북토크를 하고 왔다

공백에서 얻은 것

얼마 전 지역 도서관에서 강연을 했다. <우리 같이 볼래요?> 책에서 쓴 '세상 속 아줌마 요원들의 세계' 내용을 바탕으로 1시간가량 지역 주민들 앞에서 한 강연이었다. 주요 내용은 혼자 늘 1인분을 다 하면서 세상을 살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누구든, 어느 때는 누군가를 도우면서 1.5인분을 할 수도 있고, 어느 때는 도움을 받으면서 0.5인분만 하게 되는 날도 있는데 사회가 좀 더 '1인분 다 하지 못함'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골자로 말했다. 그러면서 아줌마가 되고 나서는 누구든 선뜻 돕고 선뜻 나설 수 있게 되었다는 내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강연을 해 보니까 알겠다. 내가 얼마나 아줌마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세상에서 후려쳐지기 쉬운 아줌마-보통 맘충이나 억척스러움, 민폐캐로 그려지는-안에 사실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고 싶었다. 우리도 사실은 그냥 '사람'이라는 것을, '아줌마'라는 카테고리로 묶어버리기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더 오래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줌마 이야기야말로 전국 순회강연을 돌 만한 이야기 아닐까. 세상에 어디나 있고 어디에서나 쉽게 무시당하는 아줌마 이야기. 그러면서도 교육과 생계와 가족 분야에 핵심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런 아줌마-사람 이야기. 강연 주제로 탁월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강연을 마치고 오신 분들에게 간단히 아줌마의 삶-여기엔 유자녀 여성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는데, 일단 모든 여성은 아줌마로 쉽게 칭해지기 때문이다-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었다. 정말 같은 이야기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인터뷰집으로 채록하고 싶을 정도였다. 세상에 내놓고 말하지 못한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다채로운지. 아줌마에게 자식이나 가족 이상의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사회 이슈에 직접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더 듣고 기록하고 싶었다.


강연 준비하면서 타이머 맞춰 놓고 말하는 연습을 했는데, 오랜 시간 말해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여러 사람 앞에서, 그것도 내 말을 경청해 주는 사람들 앞에서 해나가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강연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걸 느끼면서 또 하나의 적성을 찾았다. 적성이 별 건가. 일을 해도 덜 힘들게 느껴지고 잘 감당할 수 있으면 그게 적성이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너무 빠르게 말한 부분만 빼면 스스로 기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다음번 강연엔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말해야겠다 싶다. 그리고 오신 분들이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겠다.


글 쓰는 사람이 된 것, 강연하는 사람이 된 것은 내 삶의 공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의 레일에서 크게 이탈했다. 하혈을 계속해서 일은커녕 멍하니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신생아를 안고 밤수유를 하며 새벽 두 시고 세 시고 한 시간 간격으로 깨있어야만 했던 시간들은 사실상 공백이었다. 무엇도 채워 넣을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오늘 내가 쓰는 사람이 된 것은 그 공백동안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썩어 날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좌절하고 한심해하고 왜 남이시키는대로 살았나 고통스러워하는 시간들, 정말 내가 원 하는 게 뭔지 고민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허투루 흘러가지 않았다. 내 임출육의 시간, 세상 기준에선 경력이 단절되고 돈도 벌지 못한 '맘충'의 시간은 미안하지만 헛되이 흘러가지 않았다. 공백의 시간을 살면서 정말로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생의 이유에 대해 천착하게 되었으며 한정된 시간 동안 무엇을 진정 하고 싶은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7월에 있을 북토크를 앞두고 다시 한번 강연 자료를 점검하면서 문득 이 문장이 떠올렸다. 글 마무리 대신 그 문장을 써 본다.


인간이라면,

당신의 삶이 내 삶과 어느 부분에서든 겹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동지입니다. 언제든 당신과 느슨한 연대를 이루고 싶습니다.


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나의 생을 들여서.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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