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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Sep 22. 2023

알로하, 기억나지 않는 천국

환상 속의 하와이

올여름엔 오이를 100개 넘게 먹었다. 입맛이 없어 간장에 비빈 밥과 오이만 먹은 거다. 그런다고 살이 빠지진 않지 오이가 너무 좋아서 그렇게 했다.


이제 정말 여름이 가나 보다. 알로하 셔츠에 복서쇼츠만 입고 있으니 집 안이 서늘하다. 얇고 폭닥한 이불 하나만 뒤집어쓰고 누워 하와이에 관련된 책을 쌓아두고 읽었다. 지난달에 출간 계약한 글을 쓰기 위해서 빌린 건데 어느새 빠져들어 읽게 되었다. 오래된 LP를 쌓아두고 팔고, 쿰에게 훌라를 배우고, 서핑 보드 위에 둥둥 떠 있다 뜨거운 햇빛에 등껍질이 벗겨지는 삶이 하와이에 다 있다. 

하정우에게 왜 그렇게 틈만 나면 걸으러 하와이에 가냐고 어떤 인터뷰어가 묻자 특유의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던 게 생각난다.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하와이의 기운, 공기, 땅, 너무 좋아요. 그냥 걷기만 해도. 그런 맥락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읽는 책은 선현경 작가님이 배우자인 이우일 님과 하와이에 년가량 거주했던 이야기를 쓴 [하와이하다]인데 가볍게 읽다가도 문득 울컥하게 된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때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따져보면 가장 좋아했던 점을 살면서 가장 큰 결점으로 만들고 있었다'같은 문장들을 만날 때. 바다에 누워있으면 우주에 떠 있는 것 같다는 문장을 만났을 때.

가본 적도 없는 하와이가 그리워졌고 훌라를 배우고 싶어졌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꿈꾸는 하와이]는 훌라를 못 추는 작가님이 끈질기게 훌라 배우는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는읽을 때마다 웃기. 춤에 전혀 관심도 소질도 없는데 훌라는 배우고 싶다. 훌라를 배우면 나만의 하와이 이름을 쿰(지도자-하와이 문화에 정통하고 존경받는 여성만이 될 수 있음)이 지어주신다는데 어떤 이름을 받을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훌라를 가르치는, 존경할 수 있는 연상의 여성을 만나고 싶다.

바나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와이는 천국 같아요. 아니, 천국이 하와이 같을 거예요. 우리는 모두 천국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하와이를 천국 같다고 느끼는 거예요.


춥다. 한국은 점점 더 추워질 것이고 가을은 더 깊어질 것이다. 하와이는 해안선이 더 깎여나갈 것이고 해수면은 높아지겠지. 하와이에 갈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타국의 고통 위에 누워있고 싶진 않다. 다만 책을 붙들고 미지의 나라를 그리워할 밖에. 알로하, 하와이. 당신의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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