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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Aug 31. 2022

마음이 답답할 땐 요리를 한다

확실한 색깔과 맛과 냄새가 있는 것

왜 이렇게 쉽게 우울한가. 다른 사람도 항상 이런 우울을 끌어안고 사는 건지. 순간순간 불안의 덩어리들을 삼켜 배 깊은 곳으로 밀어 넣으며 견디고 있는지. 밀려드는 무기력함과 자신에 대한 증오를 안간힘을 써서 누르는지 궁금하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니 타인을 사랑하기란 더 쉽지가 않다.


 정말로 궁금하다. 누구나 이렇게 숨쉬기 어려운, 공기가 희박하다고 느끼는 고통을 견디며 사는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순간들을 어떻게 시간에 흘려보내는지 궁금하다. 나약한 소리라고 여길 수도 있다. 나는 외견상 부족한 것이 없으니까. 윤동주처럼 내 고통에는 이유가 없다. 시대의 고통마저 지니지 못했다. 이 의미 없는 고통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처 밀어 오르는 분노와 불안을 꾸역꾸역 삼킬 뿐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이런 답답함을 둘러싼 증오가 치밀어 오를 때는 요리를 한다.


 매끈매끈하고 통통하며 끝이 동그란 가지를 두 개 꺼낸다. 지저분한 꼭지를 칼로 힘 있게 잘라 낸다. 정확히 네 등분하여 새하얀 밀가루를 골고루 묻힌다. 냉장고에 있는 신선한 달걀을 끄집어내 노란 달걀물을 만들어 골고루 묻힌다. 마지막으로 식빵을 거칠게 갈아 달걀옷을 입은 가지에 입혀서 깨끗한 기름에 굽듯이 튀긴다. 빵가루가 튀겨지는 고소한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운다. 요리에 집중하는 순간엔 겨우 숨을 쉴 수 있다. 들숨이 기름 냄새를 들이마시고, 날숨이 초조함을 밀어내어 준다.


다음은 가지 볶음밥.

파에서 흰 부분이 많도록 가늘게 썰어 우묵한 프라이팬에 기름을 잔뜩 두른 뒤 파 기름을 만든다. 가지 2개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닦은 뒤 최대한 작은 토막으로 썬다. 기름에 파 향이 넉넉히 우러났다 싶으면 작게 썬 네모난 가지 조각들을 프라이팬에 쏟아붓고 파슬파슬해질 때까지 볶는다. 그렇게 볶은 가지에 간장과 요리 에센스를 넣어 맛을 낸다. 그런 뒤 고두밥을 넣어 가지와 충분히 섞어주고, 마지막엔 불을 확 세게 해 불맛을 낸다.


가지는 나 말고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지의 물컹물컹한 식감과 어두운 보라색을 띠는 색감이 아이들은 싫은 모양이다. 가지 요리는 그야말로 나만을 위해 만드는 것이다.

우울하고 힘이 빠질 때 생생하고 탱탱한 가지로 내가 손 놀리는 대로 분명한 결과물이 나오는 먹거리를 만든다. 완성된 요리엔 확실한 색깔과 냄새와 맛이 있다. 내 존재가 희미해져 사라질 것 같을 때,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고 둥둥 떠 있는 것 같을 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기름처럼 둥둥 뜨는 것 같을 때 나는 요리를 한다. 내 손으로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낸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일을 하면 마음이 조금쯤 가라앉는다. 요리를 아주 싫어하면서도, 마음이 공기 중을 부유하며 가만히 앉아있지 못할 때칼을 깨끗이 씻어 도마에 얹어 두고 냉장고를 뒤져 손이 가는 뭔가를 만든다.


오늘은 가지를 잘 씻어 간 했다가 마늘과 볶고, 며칠 전 사 둔 닭봉을 간장과 맛술과 갓 다진 생강에 절여 에어 프라이어에 구웠다.

온 집에 달큰한 간장 냄새가 퍼진다. 이제는 기도하고 맛있게 먹는 일만 하면 된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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