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지지 않는 삶
연말 우울증, 계절 우울증이 겹쳐 12월은 나에게 잔인한 달이다. 우울증의 내용은 이런 것. 올해 내가 뭘 했나. 시간은 흐르는데 남은 게 없구나.
한 해를 잘 보낸다는 건 어떤 건가. 누가 판단하나. 한 해를 보낸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나 - 같은 잡념이 꼬리를 문다. 사실 1년이란 거, 그냥 자의적으로 구분해 둔 것이고 시간은 직선상의 것이 아닌데 12월이 올 때마다 과거를 돌아보며 마이너스 점수를 매긴다. 합격점은 영영 먼 곳에.
며칠 전엔 낙심하는 마음이 깊이 들었다. 다 너무 허무했다. 뭔가 무지하게 애를 썼는데 다 무용지물이 된 것 같았다. 아이를 돌보고, 수업을 하고, 나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보낸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기네스북에 오를 수 있는 일만을 성취로 두고 싶은 것 같다. 철없다. 아직도 철이 없다. 어른이 아닌 마음으로, 그저 낙심하며 시간을 보냈다. 쉬운 일이다. 마음은 쉽게 마이너스로 흐른다. 좌절하고, 낙망하고, 슬퍼하고, 스스로를 미워하는 일은 언제나 쉽다. 그쪽으로 돌아가는 물길은 내리막길이라 쉽게 흐른다. 반면 마음을 세우는 일, 바닥에 엎드려 있지 않는 일, 무한정 땅굴을 파지 않는 일, 괴로움을 희망의 방향으로 돌리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힘이 많이 든다.
지난주 내내 스스로에게, 또 가까운 사람들에게 투정 부리며 함부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또 손쉬운 절망을 하고 있다.
과도한 목표를 세워 두고 그 목표를 달성 못 한 스스로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떠미는 일을 또 하고 있다.
난다 작가의 <도토리문화센터>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잘 모르는 희망보다는 잘 아는 좆같음이 더 안락한 법이라고.
나는 자꾸만 잘 아는 구덩이로 기어들어간다.
조급한 마음이 들면 책이,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온다. 불안한 마음으로 무엇에도 집중을 못 한다. 안절부절못하며 못다 한 일들만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그 시간에 뭐라도 하면 될 것을. 현재에 집중하기 어려워서 그렇다. 얄팍하게 팔락거리는 마음으로는. 미풍만 불어도 뒤집어진다.
그래서 도서관에 왔다.
클레어 키건 책을 빌려서 표지라도 들여다 보고, 몇 글자라도 써 보려고 도서관의 이미 책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자리를 잡는다. 나는 어려운 쪽을 선택하러 왔다. 마음을 함부로 내버려 두지 않는 쪽으로. 함부로 소진되지 않는 쪽으로.
절망하는 일은 언제나 쉽다.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은 그러지 않기로 한다.
한 해 동안 많은 책을 읽었다. 혼자서라면 끝까지 안 읽고 못 읽었을 책을 독서모임을 꾸림으로써, 한강 읽기 모임에 참가함으로써 끝까지 읽었다.
책을 통해 절기를 기억하게 되었다. 리코더를 불게 되었다. 달리게 되었다. 생은, 시간은 의미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 당연함을 매일 기억하며 살고 싶다. 어렵고 힘들어도 책 읽는 것을, 사람 만나는 일을 지속하고 싶다. 그래야 내가 산다. 내 마음이 바로 선다. 그 단순한 사실도 마음에 힘이 있어야 붙들 수 있다.
언제나 어려운 쪽으로.
어려운 쪽을 선택해야 이 긴 생을 견딜 수 있다.
책에 기대서.
한 해를 살았고,
감히 다음 해를 바라다본다.
그 어려운 쪽으로 나는 간다.
혼자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