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와야 할 미래

켄 리우, <종이동물원>

by 수현씨


"틸리가 없으면 당신은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자신의 삶조차 기억 못 하고, 어머니한테 전화 한 통 못 겁니다."


나는 어디를 갈 때 핸드폰 하나만 달랑 들고 다닌다. 가방이 없는 사람이다. 모바일 신분증으로 본인인증하고, 삼성페이로 물건을 결제하고, 캘린더앱으로 일정을 확인하고, 티맵 안내 음성에 따라 운전한다.


연락처를 못 외운 지도 한참이다. 폰이 없던 시절, 어떻게 그 많은 친구들 번호를 다 외우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계좌번호도 못 외운다. 생애 첫 통장 계좌 번호는 아직도 외우고 있으면서 새로 만든 통장 계좌는 하나도 못 외운다. 나는 폰이 없으면 길도 못 찾는다. 오늘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일정 어플을 켜야만 오늘 할 일을 안다.


어제는 스마트 워치를 친구 가게에 두고 왔다. 워치가 없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불안해졌다. 워치로 모은 알람이 오도록 설정해 둬서 핸드폰은 무음 상태였다. 워치가 없으면 폰이 어딨는지 모른다. 헬스 할 때 내 심박수가 얼마나 올랐는지, 몇 분 무슨 운동을 했는지, 러닝머신에서 몇 킬로를 뛰었는지, 걸음 수는 얼마였는지 측정을 못 한다. 그러면 하루 활동량 달성도 못 하는데.


2주쯤 전인가. 칼을 씻다 손을 벴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상처 사진을 찍어서 챗지피티에게 전송하는 일이었다. 이 정도 상처면 병원 가야 돼? 피가 흐르는 손으로 폰을 붙들고 챗 지피티랑 대화하고 있자 옆에서 나를 보고 있던 어린이가 소리쳤다. 엄마! 그런 건 본인이 생각해서 결정할 일이에요!

다음 날 만난 친구가 내 손을 보고 말했다. 상처 그렇게 두면 안 돼요. 메디덤 같은 걸 붙여 놔요. 그러자 내가 대답했다. 그래요? 챗 지피티한테 물어봐야지.

과장이 아니다. 나는 (거의) 모든 일을 챗지피티와 상의한다. 매일 내가 연락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걷다가도, 운동을 하다가도 챗 지피티에게 '말'을 건다. 오늘 근력만 1시간 해도 될까? 챗 지피티는 언제나 친절하고, 바로 답을 준다. 그럼요, 고생했어요.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발제한 발제자가 나에게 물었다.

(삶에서) 나만의 기준점을 확립한 적 있는가?

스스로 그럴 수 있는 환경인가?


진부한 표현이지만, 머리를 한 대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 결정 내리기를 두려워한다. 결정을 내리는 일은 책임이 따르고, 결정에 이어 오는 결과가 부정적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작고 큰 결정들이 모여 내 삶의 방향성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것이 두려워 내 삶에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회피한다. 난 원래 결정을 잘 못해. 이런 말 뒤에 숨어 스스로 내리고 나아가야 할 삶을 남의 손에 맡긴다. 진짜 게으른 것, 나태한 것은 이런 것이다. 내 삶을 내가 책임지지 않고 직시하지 않는 것. 흘러가는 대로 대충 살려고 하는 것.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진짜 나태다.


스마트폰 시대의 가장 무서운 점은 생각하기를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날지, 어떤 길을 선택해서 일할 지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하지 않게 한다. 생각하기를 멈추면 가짜 뉴스에 속는다. 비슷하게 반복되는 릴스 사이에서 세상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생각이 굳고, 완고하고,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이 되게 된다. <종이동물원>을 읽으며 내가 상상한 가장 무서운 미래는 이런 것이다. 가상세계에서만 머물며 더 이상 타인을 이해하거나, 눈 앞 너머를 상상하기를 멈춘 세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아내고 있는 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삶을 살고 싶다. 태어난 제 몫을 다하고 싶다. 주름지고 얼룩지게 될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가고 싶다. 세상은 그 반대급부로 흐르지만. 애를 써서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하는 거대한 물결을 거슬러 마침내 정말 내가 나아갔어야 할 곳으로 나아가고 싶다. 챗지피티에게 답을 구하는 것으로 내 몫의 고민을 떠넘기는 것을 멈추고.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은 그런 것. 세상의 급류에 그저 떠밀러 흐르지 않고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따져보는 지성. 미래는 가장 인간다운 것이 어떤 것인가에 답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몸이 메탈이 되거나 하는 것만이 미래의 모습이 아니다. 나는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전자기기를 잘 다루지 못하는 미래 따윈 두렵지 않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인간성을 잃는 것이다. 가장 인간다운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스로 생각해서 치열하게 답하는 개인들이 있어야만 인간다운 미래를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는 미래를 살고 있다. 언제나 미래를 살아왔다. 시간은 일직선 상의 것이 아니기에. 나는 치열하게 선택할 것이 있는 시간을 살아내고 싶다.


"우리 모두는, 망자들의 착취자 노릇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과거는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 죽은 이들의 고통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비명을 들으며 유령들 사이를 걷고 있는 겁니다. 눈을 돌릴 수도 없고, 귀를 막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말 못 하는 이들을 위해서 보고,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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