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리듬으로

한강, [빛과 실]

by 수현씨

올해의 시작과 마지막을 한강 작가의 책으로 하게 되었다.

2025년엔 한강을 끝까지 읽어보자는 친구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꾸준히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같이 읽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

[흰]을 시작으로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 영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빛과 실]까지 읽을 수 있었다. 내년의 첫 책도 한강이다.

함께 읽고 나눈 시간 덕분에 한강 작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문장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빛과 실]은 내 삶의 화두 같은 책.


15분마다 거울 위치를 바꾸며 작은 정원을 돌봤던 한강 작가의 마음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생명을 온 힘을 다해 사랑하는, 애쓰며 돌보는, 그렇게 더욱 생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힘 있고 단단한 사람.

한강.




12p)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13p)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14p)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 힘을 다해 배소 기어 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19p)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28p)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35p)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노벨상 수상소감문 중)


95p) 햇빛이 잎사귀를 통과할 때 생겨나는 투명한 연둣빛이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특유의 감각이 있다. 식물과 공생해 온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리라 짐작되는, 거의 근원적이라고 느껴지는 기쁨의 감각이다. 그 기쁨에 홀려 십오 분마다 쓰기를 중지하고 마당으로 나와 거울들의 위치를 바꾼다. 더 이상 포집할 빛이 없어질 때까지 그 일을 반복한다.


*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거울로 반사시켜서.


*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그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꽃들이 서서히 열린다.


*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 왔다. 이 작은 장소의 온화함이 침묵하며 나를 안아주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리고 있다. 한강은 또 어떤 "삶"의 모습을 소설로 끌고 올까. 그의 치열하고 뜨거운 질문들과 고민이 담긴 문장이 애타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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