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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Aug 05. 2022

내 애가 보통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

어제 [초등학교 만 5세 입학 연령 하향 관련 교육 주체 설문지]를 문자로 받았다. 만 5세 초등학교 조기 입학에 반대하냐 찬성하냐 묻는 설문지였다. <매우 반대함>에 대부분 체크하면서 내가 감히 교육 주체라고 할 수 있,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식을 키우고 있다고 해서, 학생 몇 명을 가르치고 있다고 해서 교육의 주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민들레> 잡지를 접하면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교육에 대한 기본 상식들이 무너졌다.


무조건 학교에 가서 공교육을 따라가느라 급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경쟁 일변도인 사회적 구조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 경쟁하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전엔 몰랐다. 정말 몰랐다. 입시 위주의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도 생각보다 세상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내 자식만큼은 경쟁입시에 들어가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원래는, 교육에 대해 불안이 많았다. 00살부터 한글 교육 시작해야 한다던데. 수학, 과학, 역사, 인문, 예술 분야 책을 다양하게 인풋 해줘야 한다던데. 한글이랑 영어랑 같이 가야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게 된다던데. 영어는 파닉스부터, 늦어도 6세부터 시작해야 한다던데 같은 정보들로 인해 항상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부채감이 들었다. 자식 똑바로 교육시키기 너무 늦은 건가? 다른 사람들은 단계적으로 교육시키고 있는데 내 자식만 맨날 운동장에서 흙이나 뒤집어쓰고 노는 거 아닌가? 예체능은? 예체능도 7세부터 시작해야 한다는데 그럼 무슨 운동을 어떻게 시켜야 하지?


 이런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첫째아이는 남들이 해야한다는 대로 사교육을 시켰다. 4세 때 영재 체육을 시키고(여러 달치 한꺼번에 비싸게 끊었는데 한 달 하고 애가 절대 안 간다고 해서 돈 날림), 차에 탈 때마다 영어 CD를 틀어 따라 부르게 하고(8세인 지금, CD 틀기를 소홀히 한 결과 다 까먹음), 통글자 교육(‘자, 봐라, 이 글자가 ‘바’란다. ‘바 바 빠 빠’라고 적힌 거야.’-애는 전혀 관심 없음)을 책 읽을 때마다 하고, 매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혔다.

 인생 어느 부분에서는 이 아이가 내가 가르치려고 애쓴 부분이 적용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미끄럼틀 거꾸로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아이로만 성장했다. 그리고 과도한 독서교육의 여파인지 친구 집에 놀러가서도 그집 책장에 있는 책만 읽는 애가 되었고.


 이러한 일련의 교육의 실패(?)를 겪으면서 내가 가정에서 자식에게 하려는 교육과, 내가 가르치는 학생에게 하는 교육을 비교해보았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은 거의 다 공부를 잘한다. 경쟁에서 나름대로 승리를 거둔 아이들이니 학교에서 누구보다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 나름대로 충격적인 사건이 한 가지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3년 넘게 가르쳐 온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첫 모의고사를 치른 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험 결과가 나빴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국어, 영어 과목에서 전교 1등을 했다. 그런데 수학에서 전교 30등을 한 것이다. 이 등수 때문에 충격에 휩싸여 자기는 수학 머리가 없는 사람이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시험 범위를 소화할 수가 없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만 있고 싶다는 것이다. 그냥 하는 소린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정말로 모든 공부를 놓았다. 집에서는 유튜브만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밥도 안 먹고, 잠도 잘 못 잔다는 학부모의 울음 섞인 전화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학생과의 긴 상담 끝에 일단 중간고사까지 쳐보고 학교 이야기를 더 해보자, 하고 일단락 지었으나 입맛이 내내 썼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인간은 생애 전체에서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초중고대학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후에도 취업 경쟁, 취업하고 나면 승진 경쟁, 승진하고 나면 아래에서 치고 올라올 신입들과 경쟁, 그러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면 배우자 찾기 경쟁, 그다음엔 임신 경쟁, 출산 후에는 자식 교육에 대한 경쟁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틀에서 아예 벗어나지 않으면 평생 경쟁 일변도다. 나는 이런 틀이 지긋지긋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경쟁에 노출시키고 친구를 경쟁 상대로 만들어야 하나? 내 아이가 보통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나, 안정된 직장은 얻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은 결국 '내 애가 다른 애들을 제치고 1등을 하면 기쁘겠다'는 말에 가깝다고 본다. 등수 따위에 상관없이 부모가, 사회가 아이를 지지해줄 수 있어야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마음이 안정적인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다.

 

 나는 지금 내 삶이 고등학교나 대학생 때의 삶보다 좋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을 때 한다. 시험 준비도 내가 필요하니까 한다. 말하자면 목적을 내가 정했고, 목적의식이 뚜렷하기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비교적 잘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거나 내가 직접 정한 것이 아닌 것들을 해야만 할 때, 할 수밖에 없을 때 사람은 괴로워진다.

내 최악의 악몽은 시험 치는 교실에 앉아 있는데 나 혼자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시험 트라우마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에게 ‘지금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어른 되면 훨씬 힘들어. 지금 좀 힘들어 두면 어른 되어서 편하다’ 같은 말은 다 어른들의 겁주기식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제일 힘들다. 한 달 안에 수행평가 7개, 과목별 모의고사, 중간고사, 쪽지 시험, 숙제, 주제발표, 탐구 대회, 생활기록부 작성 등을 소화해내야 한다. 기껏해야 17살 18살이다. 그러면서 좋은 성적도 내야 한다. 숙제를 하기만 하면 끝이 아니고, 누구보다도 잘 해내야 한다. 요즘은 학생 수가 더 줄어 경쟁도 더 심하다. 그런데 학교 다니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나. 청소년 자살률 1위는 농담이 아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팩트다.  

    

  나는 중학생 때 열등생이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필요를 느껴(젊은 국어 선생님을 열렬히 좋아음) 공부를 하니 당연히 중학교 때보다 성적이 잘 나왔고,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해 줬다. 그래서 스스로, 재밌어서 공부를 했다.

반대로, 내 동생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초/중학교 내내 전교 1등에다 전교 회장도 할 만큼 ‘인싸’였다. 그래서 시골에서 무리해서 외고로 보냈다. 외고 진학 이후 인싸였던 동생은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다. 전교 1등 안 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 사이에서 내 동생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많이 울었고, 괴로워했고, 시험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동생도 성인이 된 지금이 차라리 지금이 더 편하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시험 트라우마로 힘들어한다.      


 앞선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나는 이런 경쟁 일변도의 아사리판에 자식을 집어넣지 않기로 결심했다. 차라리 공부 못하는 게 정말로 낫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도 기대를 안 하고, 본인 하고 싶은 일 하며 살 수 있다.

우리집 애들은 하교하면 운동장에서 해질 때까지 논다. 책 좀 읽다가 일찍 잔다. 주말엔 하루 죙일 놀이터에서 새카맣게 탈 때까지 논다. 그게 루틴이다.




그런데, 이렇게 맨날 흙바닥에서 나뒹굴며 노는 시간만 보내다 보니 둘째 놈이 마음에 좀 걸린다. 책은 좀 좋아하는 것 같지만(온전히 언니 영향-언니가 책 읽느라 안 놀아주니까), 정말 제멋대로다. 첫째는 스스로 글도 깨치고 산수 놀이도 좋아해서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었던 것인지도.

작년 최대 고민은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둘째를 어느 유치원으로 입학시킬지에 관한 거였다. 추천받은 유치원 중 한 군데는 단계적으로 영어를 놀이식으로 가르치고 음악도 체육도 체계적으로 시킨다는 곳이고, 다른 한 군데는 아예 숲 속에 있어서 매일 숲 놀이하고 흙바닥에 뒹군다는 곳이다. 공부 같은 건 누리교육과정 이외에 전혀 안 시키고.

숲 놀이하는 유치원으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집에서 차 타고 40분 이상 가야 해서 포기하고 그냥 집 근처 무난한 유치원에 올해 들어갔는데 잘 한 선택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참,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건 너무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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