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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Aug 02. 2022

오늘분의 우울을 꿀떡 삼켰다

어디로 가닿을지 알 수 없지만

글은 왜 언제나 내밀한 곳을 헤집어놓고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비추어보게 하는 것일까.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기에 안전한 곳이 어디일지 몰라 어디에도 내놓지 못하는 글들을 나는 이곳에 계속 쓰고 있다.



스물 한 살의 나를 떠올린다.


도망치듯 휴학하고 교육학 강의를 듣는다는 핑계로 노량진에 머물렀을 때.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아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공부를 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던 그 겨울의 추운 날들을 떠올린다.


일어나서 대방역 근처의 허름한 건물로 들어가 조화섭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4시간 연달아 듣고 나면 할 일이 없었다.


애초에 임용 합격이라는 꿈을 단단하게 품고 노량진에 간 게 아니었기에 시간 앞에 그저 덜렁 서 있었던 날들이었다. 친구도 없었다. 기댈 대라곤 축축하고 벌레 나오는 하숙집 방 뿐이었다. 그마저도 밥을 좀 많이 먹거나 하루에 우유를 한 컵 이상 마시면 주인한테 야단을 맞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교육학 강의와 나만 있었다. 괴로웠던 대학교 생활을 그만두고 서울까지 왔는데 뭘 해야할지 몰랐다. 처음엔 독서실을 찾아 다녔으나 사면이 막힌 독서실 책상을 못 견뎌 금새 뛰쳐나왔다. 서울은 계속 낯설었다. 노량진이 지긋지긋했는데 벗어나지도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숙대도 대학로도 홍대도 둘러볼 수 있었는데 서울의 모든 지하철역과 길들이 서먹했다. 환승이 낯설었고, 노선표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정확한 방향으로 바쁘게 뛰어는 사람들도 낯설었다.

서울은 표정이 없었다. 무감각을 갑옷처럼 둘러싸고 있는 도시였다. 서울에서 나는 길가는 사람 1이라는 좌표점으로만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지하철을 타고 인파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다가 동대문 역사공원에서 환승해 다른 호선으로 옮겨가 힙하다는 장소에 가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늘 혼자였다. 지독하게 외로운 도시였다. 서울은.


노량진역을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윤동주처럼 조국을 잃지도 않았고, 김수영처럼 시대를 잃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자주 망연해졌다.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철저한 익명성 속에서 혼자 아침과 점심과 밤을 감당해야했/다. 그런 시간을 더는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워킹 비자를 얻어 호주로 떠나게 된 거다. 더 멀리. 나란 인간이 살아온 모든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더 멀리 떠나기 위해.


어느 날 밤 나는 정말로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에겐 시시때때로 이유 없이 해일처럼 덮치는 우울감이 없는 걸까?

아무 일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두 아이를 겨우 재운 밤, 몰래 도둑처럼 빠져나와 마트에서 잘못 산 최저가 와인을 혼자 한 병 비워버리는 일은 없는 거냐고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고 싶다.


나는 생리 전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호르몬 변화로 괴로운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라서 괴롭고 우울한 이 마음이, 시시때때로 존재 자체를 덮어버린다.


이달분의 소박한 우울이 때가 됐네, 하면서 머리를 디밀고 올라오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없는 걸까.

주기적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을 감당하며 사는 사람은 없는 건지, 있다면 어떻게 삶을 견디고 있는지 정말로 궁금하다.


마음이 뚫려 조그만 생채기에도 엉엉 울어버릴 것 같은 날엔 사람을 일부러 더 만나고 다니기도 한다.

영어 스터디도 다녀오고, 점심도 일부러 함께 떠들며 먹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운전길에는 잭 존슨의 신나는 음악도 크게 틀고 따라 불러 본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여러 페이지 읽는다. 남들 보기에는 아주 멀쩡하고 생산적인 태도로.


하지만 사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을 억누르고 있다. 이런 날엔 미래에 대해 작은 부분까지 의심하게 된다. 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넘겨다보며 부러운 마음을 평소보다 더 크게 가지게 된다.


내가 이런 마음을 주기적으로 갖고 살아간다는 것을 남들이 알게 된다면 나를 사이코 미친놈이라 보지 않을까.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나의 가장 좋은 모습을 내어 보이곤 한다.


매일의 우울을 꿀떡꿀떡 받아 삼키며 술 없이는 하루에 세 시간도 못 잤던 스물한 살, 둘째를 낳은 후 내가 왜 사는지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서른두 살의 때에도, 가족들 앞에서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흉내를 태연하게 냈다. 도저히 못 견뎌 휴학을 선택했을 때도 부모님에겐 다른 핑계를 댔다. 그날의 괴로움을 빨리 흘려보내기 위해 차마 글로 쓸 수 없을 정도의 나쁜 짓도 많이 했다.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며 느낀 수치스러움을 더 끔찍한 일로 덮고 싶었기에 그렇게 했다. 기억 중 칼로 도려낸 듯 뭉텅 잘려나간 부분도 있다. 인간은 너무 괴로울 때의 기억을 정말로 잊어버릴 수 있는 존재니까.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다가,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키고 자살한 딜런의 엄마인 수가 “아무것도 안 해.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하고 말했을 때 친구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야. 슬퍼하고 있잖아. 그거 아주 힘든 일이야.”라고 말해주는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좋은 사람도 나쁜 행동을 할 수 있고, 사람은 누구나 도덕적 혼란 속에 있으며 무언가 끔찍한 일을 했기에 다른 행동이나 동기마저 무위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나는 지금 슬퍼하고 있다. 그래서 무척이나 지쳤다.

아직도 수많은 도덕적 혼란 가운데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이 책을 통해 나의 죽음이 남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남길지 확연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은 남은 생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디로 가 닿을지 알 수 없지만.


글쓰는 동기와 행동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서,

오늘도 읽는다.

그리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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