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팬케이크를 맛보고 올게
내 마음대로 하와이
오랜만에 잭 존슨의 <bananan pancakes>를 들으며 어쩔 도리 없이 하와이를 떠올리고 말았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하와이를 나는 꽤나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때문일 거다.
내가 가본 여름나라는 죄다 동남아니 아는 풍경을 중심으로 상상해본다.
어깨를 따갑게 태우는 햇빛과 바람결에 실려오는 과일 향기, 얇은 옷을 입고 태닝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곳. 기다란 서핑보드를 든 맨발의 서퍼들이 도로가를 걸어 다니고, 방금 바다수영을 하고 나온 사람들이 젖은 머리로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그런 곳을 상상한다.
그리고 하와이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도넛, 말라사다의 맛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하고, 만들자마자 먹으면 입 안에서 구름처럼 사르르 녹는다는 그 맛. 실제로 먹어 보면 실망할지도 모르니까 그전에 미리, 가상으로 존재하는 그 맛을 당겨와 상상의 혀로 조금씩 녹여 먹어본다. 가루 설탕을 뭉쳐놓은 맛일까? 겉이 바삭하다면 크루아상 맛? 속이 퐁신퐁신하다면 솜사탕맛?
와이키키 해변에서 말라사다를 먹는다면 그건 보통 맛이 아니겠지. 경치가 플러스+++++++된 맛, 그곳에 있는 사람만 맛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일 게다.
하와이에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에는 팬케이크도 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이 난다는 팬케이크.
주인이 주문받자마자 바로 반죽해서 구워준다는 '헤븐리'라는 이름의 팬케이크가 있단다. 얼마나 맛있으면 이름이 감히 천상의, 뭐 그런 거겠어.
마카다미아 소스를 듬뿍 뿌려주는 보드랍고 탄력 있는, 갓 구워 뜨거운 팬케이크를 칼로 슥슥 잘라먹으면. 그러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하와이의 뭉게구름을 곁들이면.
말이 필요 없어지는 장면이 될 거다.
내 귓가에는 계속 잭 존슨의 노래가 흐르고 있다.
Well can't you see that it's just raining?
Ain't no need to go outside...
But, baby, you hardly even notice
When I try to show you this
Song is meant to keep you
From doing what you're supposed to.
Waking up too early
Maybe we can sleep in
Make you banana pancakes
Pretend like it's the weekend now
And we could pretend it all the time
Can't you see that it's just raining?
There ain't no need to go outside
But just maybe, laka ukulele
Momma made a baby
Really don't mind the practice
'Cause you're my little lady
Lady, lady, love me
'Cause I love to lay here lazy
We could close the curtains
Pretend like there's no world outside
And we could pretend it all the time
Can't you see that it's just raining?
There ain't no need to go outside
Ain't no need, ain't no need, mmm, mmm,
Can't you see, can't you see?
Rain all day, and I don't mind
But the telephone is singing
Ringing
It's too early
Don't pick it up
We don't need to
We got everything
We need right here
And everything we need is enough
Just so easy
When the whole world fits inside of your arms
Do we really need to pay attention to the alarm?
Wake up slow, mmm mm, wake up slow
But, baby, you hardly even notice
When I try to show you this
Song is meant to keep ya
From doing what you're supposed to
Waking up too early
Maybe we can sleep in
Make you banana pancakes
Pretend like it's the weekend now
And we could pretend it all the time
Can't you see that it's just raining?
There ain't no need to go outside
Ain't no need, ain't no need
Rain all day, and I really, really, really don't mind
Can't you see, can't you see?
You gotta wake up slow
처음에 비가 듣는 소리가 잠시 들린다. 창 밖에서 조심스레 두드리는 빗소리.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 선율.
가벼우면서도 조심스러운 배려가 들어 있는 잭 존슨의 목소리.
내용은 대충, 늦게 일어나서 주말인 것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자, 밖에 비도 오는데, 내가 바나나 팬케이크를 만들어줄게 뭐 이런 거다.
어딘가에서 구워지는 핫케이크 냄새.
뺨에 떨어진 빗방울들.
때마침 틀어져있던 잭 존슨 노래.
그런 것들이 순식간에 나를 가본 적도 없는 하와이로 데려갔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비웃을까 봐 한 번도 말한 적 없는데, 나에겐 이런 능력이 있다. '현실의 나' 껍데기를 의자에 남겨두고 멀고 먼, 세상에 존재하지조차 않는, 나만 아는 그런 곳으로 별안간 날아갈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배우자는 내가 그럴 때마다 눈에 초점이 없어지며 무슨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다고 한다.
박서련의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에 나온 소녀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마법 능력을 얻듯이, 껍데기만 현실에 남겨두고 어딘가로 휙 날아갈 수 있는 건 고통이 내게 준 선물이다. 유년시절 엄마 아빠가 소리치고 싸우고 집기가 깨지는 소리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고통이, 너무나도 초라했던 내 삶을 떠나고 싶게 만들었던 그 고통이.
나에게 이상한 능력을 준 거다.
그 능력 때문에 운전하다 정신이 멀리 떠나버려 두 번이나 절벽에서 떨어져 차가 완파되는 사고를 겪기도 했지만.
오늘의 능력.은 나를 하와이에 데려다주었다.
그래서 여름 바람과 짙푸른 하늘과 바다내음을 곁들여 말라사다와 팬케이크를 먹고 왔다. 내 마음대로, 하와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