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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Aug 09. 2022

불시에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을 것은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읽다가, 요조 님이 자신의 죽음에 관해 쓴 문장에 팍 꽂혔다.


"저는 언젠가 운이 좋아서 스스로 제 죽음이 임박했다 직감하게 되면요, 그때부터는 기타를 악착같이 챙길 겁니다. ... 그래야 불시에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이런 부고 기사가 나오지 않겠어요? ... 죽는 순간까지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천생 뮤지션이었다."


나도 운이 좋아 죽음을 미리 직감할 수 있게 된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을 붙들고 있을까.


안자이 미즈마루는 자기 작업에서 평소처럼 그림을 그리다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는데, 그거만큼 부러운 죽음이 있을까 싶다.


병원에서 목숨을 보전하며 대소변을 누군가 받아주다 겨우 겨우 죽음을 맞이하는 건 생각만 해도 괴롭다. 물론 그렇게 목숨을 부지하는 분들의 삶이 헛되다 말하는 건 결단코 아니다. 아픔을, 병을, 깨끗지 못한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고 싶어서 그리한 사람이 어딨겠나. 다만 나는, 내 것일 수 있는 미래에 대해 가장 밝은 노랑에 가까운 방향으로 생각을 틀고 싶은 거다. 아직 덜 익은 인간의 오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감히, 쓴다.

그래.

나는 내 방에서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나고 싶다.  


죽음에 대해 밝고 긍정적이고 다양한 방식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죽음에 가까울 만큼 충분히 나이 먹지 않아서인 것 같다. 아직 덜 아프고, 덜 외롭고,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내가 움직이고 싶은 만큼 움직이고 하고 싶은 만큼 일하다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조금씩 몸과 정신이 망가져갈 거다. 벌써부터 비올 때마다 엉덩이 부근이 묵직하니 쑤시고 무릎은 칼바람이 지나는 것처럼 시린데 시간이 가면 통증도 더하겠지. 몸이 아픈 만큼 신경도 날카로워질 테고. 굳어진 근막처럼 단단하고 딱딱한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세상을 판단하겠지. 말랑말랑했던 부분들을 잃게 될 거야.


그래도 이것만은 끝까지 잃고 싶지 않다, 싶은 건 나의 어떤 부분일까.


일단 글을 계속 쓰고 싶다.


운이 좋아 거의 매일 글을 쓸 수 있다면, 70세가 될 때까지 만 이천 편에 가까운 글을 쓰게 된다.

그 정도 쓰다 보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잘 나가는 작가가 되길 바라서라기보다는 내 삶을 서늘하게 성찰할 수 있기를 바라서, 딱딱해지려는 사고를 자꾸 말랑하게 매만져줄 수 있기를 바라서 매일 글을 쓴다.


언젠가,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 고운님이 '실패는 결론이 아닌 기분이다'라는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마음에 새기고 싶은 말이어서 수첩에 적어 두었다. 이번 생은 아무리 생각해도 망했어, 역시 안돼,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 문장을 꺼내서 읽으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 실패했다-라고 '느끼고' 있구나.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 기분일 뿐이야. 기분은 얕고, 금방 흘러가버려.

매일 글을 쓰다 보면 아주아주 나중엔, 내 삶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을 거야. 당시엔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초점이 흐려져버렸던 수많은 일들이, 거리가 띄워지면서 오히려 선명하 볼 수 있을 거야. 내 인생을 뭉뚱그려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글을 쓰는 거야. 작은 점들을 모아 전체를 보려고.

그래, 글은 그래서 쓰는 거야. 삶을 기분이 아닌, 좀 더 객관적인 뭔가로 보려고. 스스로는 너무 가까워서 볼 수가 없는 부분들을 활자화시켜서, 숨 쉴 구멍을 좀 틔우고 들여다보려고.



그래서.

오늘의 생각은 굳은 관절로 느릿느릿 타이핑을 치다 스르륵 책상에 엎드러져 삶을 마감하고 싶다, 는 데까지  닿았다.


이 글을 쓰면서 글 쓰는 일이 지금의 나에게 얼마나 중하고 귀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죽음과 글 쓰는 일을 동일선상에 자꾸만 놓고 있으니.


그리고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은 죽음과 동일선상에 무엇을 두고 있는지, 혹은 둘 것인지.

그건 아마도 그 사람의, 자기조차 제 안에 있는지 몰랐을 코어 같은 거겠지.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관통하고 있을 그 코어 같은 것이 무엇일지 나는 궁금하다.



당신은 죽음을 직감했을 때 무엇을 끝까지 붙들고 있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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