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요가원, 안녕

치졸한 끝

by 수현씨

오래 다닌 요가원을 그만두었다.


마음이 무거우니 몸도 무겁고 정신이 산란했다. 안 되겠다 싶어 애들을 등원시킨 뒤 마음 단단히 먹고 2시간 알람을 맞추고 낮잠을 잤다.


단호한 낮잠 덕에 그럭저럭 글 쓸 마음이 생겼다.


요가원을 그만두었다.


별일 아니라고도 생각될 수 있겠으나 계절이 여러 번 바뀔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나갔던 요가원이었다.

원장님을 무척 존경하고 따랐다. 스승의 날엔 오래 고민해서 선물을 골랐고, 손뜨개 카네이션과 길게 쓴 편지를 드렸다.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도, 머리 서기도 이 원장님께 배웠다. 속상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미리 요가원에 가서 오래 이야기도 나누었다. 열 시 반 수업 시작이면 열 시부터 가서 몸 풀면서 요가원 바닥을 닦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애들이 일찍 등원한 겨울, 유난히 추웠던 날도 요가원 문이 열리길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수련하고 오곤 했다. 그 정도로 요가원도, 원장님도 귀히 여겼다.


올해 3월. 요가원 건물을 옮기고 원장님은 변했다. 아니, 변했다고 느꼈다.

원장님 입에서 어쩌다 튀어나오는 '요즘 엄마들은 낮에 커피나 마시고 놀려고 애들 어릴 때부터 유치원 보내지'나 '여자애들은 징징거리잖아'같은 말들도 참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돈 문제가, 참, 내 마음을 묶었다.


일단 요가원 건물을 옮기면서 리모델링 비용을 많이 쓰셨던 건지 수련비가 두 배로 뛰었다. 내가 사는 지방의 어떤 요가원보다 비쌌다. 여러 달 등록하면 수련비를 할인해주시던 거나, 사정이 생겨 못 오면 한 주 수련 기간을 늘려주시던 것도 다 없애셨다. 그래도 원장님을 따랐기에 무리해서 다녔다.


이번에 애들 방학으로 한 달 수련을 못 온다고 말하자 원장님은 대기자가 많다며, 그러면 수현 씨는 다시 수업을 못 들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야박하게 들렸지만 그때까지도 원장님 좋아하는 마음이 컸다. 할 수 없지요, 그럼 저도 대기자 명단에 넣어주세요 하면서 요가원을 나왔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원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자리를 홀딩해주겠다고, 대신 수련비를 좀 깎아주시겠다는 내용이었다. 아주 조금 할인된 수련비도 다른 요가원보다 훨씬 비쌌다. 그래도 알겠다고, 계속 다니겠다고 말씀드렸다. 원장님을 따랐던 마음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서.


그러곤 거의 3주를 통으로 못 갔다. 코로나 사태가 심해진 데다 2시간 정도는 혼자 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애들이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못 간다고 미리 말씀도 드렸고 상황도 아시니 당연히 한 주라도 기간을 연장해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거의 한 달 만에 요가원에 가자마자 원장님 하시는 말씀.

"수현 씨, 기간 끝났어요. 재입금하세요."


나는 드디어 빈정이 상해버렸다.

나는 수업하면서 학생이 한 번이라도 빠지면 보강을 해주거나 수업비를 빼주는데. 애들 다니는 태권도장도 2주 넘게 빠지면 당연히 기간 연장을 해주는데. 원장님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를 빼고 대기자를 들였으면 수련비를 더 받을 수 있었는데 내 자리를 지켜준 것에 대해 내가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는 투였다. 나는 자리를 지키는 비용으로 그 큰돈, 내 한 달 용돈의 반을 덜어낸 거였다. 내가 그러겠다고 결정한 일에 이렇게 빈정상한 건 참 오랜만이었다. 남들한텐 적은 돈일지 몰라도 나한텐 큰돈이었다. 수련비 내는 것 때문에 내가 포기한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치졸한 마음이 들었다. 서운한 마음이 비죽비죽 솟았다. '진짜 치사하다. 원장님한테 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구나'하는 나쁜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런 마음으로는 앞으로 수련에 집중을 못 할 것 같았다.

밤새 고민하다가 오늘 아침에 문자를 보냈다. 개인 사정 때문에 앞으로 수련 못 갈 것 같다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매일 아침 수련할 생각만 해도 설레던, 다른 어떤 약속보다도 최우선으로 여겼던 요가원을 이렇게 그만두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매일 아침을 채웠던 요가가 갑자기 쑥 빠지니 마음이 휑했다. 혼자라도 매트 펴고 수련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영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요가도 잘하고 싶고, 원장님한테도 잘하고 싶었는데.

배우자에게 나 너무 치졸하지, 사실 남들한텐 큰돈도 아닐 텐데 나 이제 이 요가원 못 다닐 것 같애, 하니까 배우자 왈. 당신은 지금 빈정이 상한 거야. 돈 때문이 아니라. 나라도 마음 상했을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며칠 야근한다며 집에도 안 들어오더니 또 이렇게 내 마음을 녹이네.


그래.

인연이 여기까지였나 보다.

마음에 돌 여러 개를 끌어안고 꾸역꾸역 나갔는데 더는 안 되겠다.

다음 주부터는 아침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요가원을 그만두었다고 요가를 그만둘 건 아니니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건 어차피 내 주특기고, 밤은 기니까,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다.


아무튼 이렇게 어른의 삶에 스크래치 하나가 또 났다.

오늘은 마음껏 슬퍼할 예정이다.


사랑했던 요가원,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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