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고통이 대신한 자리

by 수현씨

습관이란 이런 것이다. 나도 모르게 몸에 새겨진 특정 형태를 따라가버리는 것. 아, 오늘은 정말 몸이 아프네, 애들 태권도 갔을 때 누워서 쉬어야지 몇 번을 다짐하고도 5시가 되면 일단 책상에 앉는 것.


글쓰기가 그렇고, 요가가 그렇다.

내 몸에 새겨져 버린 어떤 것이 되었다.


자그마치 4년이다. 요가로 아침을 채워온 날들이.

다니던 요가원을 그만두고 비어버린 아침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친구가 추천해줬던 요가원에 가보기로 했다. 원래 다녔던 곳보다 멀다. 오래 운전해서 가야 한다. 집에서 이렇게 멀다니. 이래서 매일 다닐 수 있을까 착잡한 마음으로 낯선 요가원 계단을 올랐다.

등록 상담할 때 어떤 운동해봤냐, 어디서 운동했냐 물으면 뭐라고 하지 고민하며 갔는데 새 요가원 원장님은 말씀이 많은 분이 아니었다. 요가를 해봤다고 하니 그러면 수업 잘 따라오실 수 있겠네요, 아픈 곳 있으면 봐드릴게요. 하곤 나를 바닥에 뉘었다.

늘 허리 통증이 있어요, 하니 내 몸을 이리저리 굴려보시곤 배꼽 근처를 강하게 다섯 번 누르셨다. 뱃가죽이 등에 갖다 붙는 것 같았다. 누른 부위가 찌릿찌릿하니 눈물 나도록 아팠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몸을 움직여보니 허리를 뭉근히 누르던 고질적인 통증이 사라져 있었다. 헐 이거 뭐야.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야 뭐야.


바로 등록표 빈칸을 채워 공손히 내어드렸다.


새 요가원은 젊은 사람들이 주 멤버였다. 그래서인지 나이 든 사람 위주였던 전 요가원보다 수련 코스가 훨씬 빡셌다. 근력 운동과 유산소를 강한 강도로 버무린 수업이었다. 머리 서기 어깨서기 거꾸로 활자세를 3세트로 계속 시켰다.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를 이렇게 오래, 여러 번 시키는 수업은 처음이었다. 머리 잠시 내려놓고, 3초 쉬고, 다시 올라가고, 30초 버티고-를 반복했다. 바람 불고 시원한 날씨였는데도 머리 어깨 팔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머리 서기도, 어깨 서기도 나름대로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원장님이 비뚤어진 부분을 똑바로 잡아주시니 못 버티고 그대로 넘어졌다. 부들부들. 운동 계속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흉내만 내고 있었구나.

원장님의 '하나, 둘, 셋, 넷, 몸 더 올리고, 엉덩이 힘주고, 자, 거의 다 왔습니다, 여덟, 아홉, 열'하고 숫자 세는 소리에만 귀를 세웠다. 제발 숫자 세다가 멈추지 말아 주세요, 엉엉.

한 시간을 겨우 버티고 후들거리는 팔다리로 계단을 기듯이 내려왔다.


오랜만에 느꼈다. 운동 첫날의 고됨을.

동작이 익숙해지면 힘든 자세도 덜 힘들게 버티는 요령이 생기는데 오늘은 진짜 생짜로 버텼다. 몸 어디에 달려 있는지도 몰랐던 부위의 근육들이 갖은 통증을 호소했다. 노트북 여는 데 손이 벌벌 떨렸다.

그런데,

재미있었다.

근육통 때문에 끙끙거리며 걷는데 신선한 유쾌함이 밀려왔다.

새롭고 탱탱한 고통이 일상의 권태를 대신한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이 말했다.

인간은 권태, 죄의식, 피해망상증 때문에 불행해지며, 그 대신 열정, 사랑, 노력과 체념, 그리고 일을 통해서 행복에 이르게 된다고.


요가에 대한 열정과 사랑, 안 되는 자세에 대한 노력, 코어 근력이 부족하다는 깨달음으로 인한 체념, 새 요가원에 대해 써야겠다는 집념으로 시작한 글쓰기라는 일이 불안과 권태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오래 다닌 요가원을 잊을 수 있을까,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운동하는 건 싫은데, 하고 생각했는데.

요가라는 아침의 습관이 나를 새로운 길로, 새로운 고통으로 이끌어주었다.


그렇게 오늘을 버텼다.

습관이란 거, 참 무섭고도 고마운 것.

내일의 권태는 내일의 근육통이 자리를 대신해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웃기게도 설레고 기대가 된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생기다니.

불안증이 도지고 난 후, 아주 오랜만에 기대감이란 감정을 느꼈다.


저녁 약 잘 챙겨 먹고 오늘은 일찍 잠들어야지. 그러고 내일의 요가를 준비해야겠다.

글 쓰다 문득 떠오른 롤러코스터의 <습관>을 따라 부르며 오늘 저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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