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용어에 "시절인연"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사람과의 만남도, 일과의 만남도, 소유물과의 만남도, 깨달음과의 만남도, 유형 무형의 모든 인연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법입니다. 하물며 내 자신의 삶과 나의 인연도 죽음이라는 것에서 헤어짐이 있 듯,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헤어짐은 서로 인연이 끝나 헤어질 수도 있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인연을 끊을 수도 있습니다.
일흔을 훌쩍 넘긴 가까운 지인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의 휴대폰 연락처에는 "죽은사람"이라는 폴더명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은사람 폴더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 지인이 스스로 정리한 인연이라고 하시네요. 하지만 진심으로 정리했다면 아예 연락처 자체를 삭제했을텐데요. 죽은사람이라는 폴더에 남겨 둔 자체가 언젠가는 어떤 계기로 다시 시작될 수도 있기에 완전히 끈을 놓지 않은 것인 듯 싶습니다. 하지만 모두 시절인연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돌아보니 1년짜리 인연도 있었고, 10년짜리 인연도 있었네요. 또 이제 막 시작되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연들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 지인의 경우처럼 정리해야하는 인연도 생겼습니다. 그 인연의 흐름을 거스르려 애를 써도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요즘 알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기왕이면 좋은 기억으로 인연의 마지막을 마쳤으면 좋으련만, 생각처럼 안되는 인연들도 더러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그 시작과 끝이 있는 것입니다. 인연을 이어가려 노력하지 않고, 만들려 억지로 애쓰지 않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