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소확행에 대해서
난생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소확행(小確幸-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한 강연을 듣고 왔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으나, 결과적으론 행복에 대한 생각이 더 복잡해진것 같습니다.
얼마전 저는 15년 넘게 해왔던 조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동안 항상 새벽에 일어나서 머리 감고 면도하고 와이셔츠의 마지막 단추까지 채워 넥타이를 메고 출근하며 남들처럼 평범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 전날 영업을 위해 술을 얼만큼 몇시까지 먹었는지 관계없이 무조건 아침에 일어나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당연히 저만 그런게 아니니 힘듦을 감내하고 너무 당연하게 살아왔습니다. 마치 다람쥐 챗바퀴 돌아가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심경의 변화가 찾아왔고, 고민끝에 그런 생활을 그만뒀습니다. 지금은 늦잠도 자고, 꽉낀 와이셔츠의 넥타이가 아닌 반바지를 입기도 하고, 수염과 머리카락도 기르기도 해보았습니다.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수염이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변한 것도 아닙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여러 행위를 하며 출근을 하지 않을 뿐이지, 그때나 지금이나 하는 일은 똑같고, 오히려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 삶을 내 맘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에 꽤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아 아내로부터 "수염깍아라! 머리 기르지마라!"하고 잔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게을러 보인다고 합니다. 아마 제 아내의 생각에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지 않고, 긴머리와 수염을 기르는 것은 게으름을 연상하는 모습으로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보다 수입이 적어진 것도 아닌데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서 느낀 점을 오늘 강연에서 알았습니다. 행복은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야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기적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 혼자만의 행복을 위해 아내와 아이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것처럼 말입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꾸 사람들은 행복의 잣대를 객관화, 수치화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걸로 행복을 비교하고 단정지으려 합니다. 객(客)관적이란 것은 남, 손님, 나그네의 입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제 3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객관적 입장이란 것은 좋은 의미로 많이 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행복에 대해서는 다릅니다. 객(客)은 나에 대해서 모릅니다. 남의 행복은 본인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파트의 위치와 평수, 자동차 제조국과 차량 가격같은 사회 통념상의 수준인 부의 축척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최근엔 SNS를 보면서 판단하곤 합니다. 하지만 페이스북과 같은 SNS는 내가 어떻게 보여지고 싶은지에 대해서 게시하는게 보통입니다. 저 또한 몇년 동안을 그렇게 살고 있다가 지난 4월1일 이후부터 페이스북의 게시글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것도 보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행복 여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만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런 판단으로 남의 행복을 가름하고 결정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글이 너무 길어져 다 적을 수는 없고 그냥 수백년, 수천년동안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성공=부(富)=행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를 위해 죽도록 열심히 사는것 같습니다. 워커홀릭이 되어 몸과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아파 본 사람만이 부보다 건강이 먼저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의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불어에는 Memento mori(메멘토모리)라는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온 낱말인데 수천년동안 프랑스 사람들의 의식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단어라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죽음을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대한다고 합니다. 죽음을 늘 생각하기에 현재의 삶에 애착을 갖게 됩니다. 즉 프랑스 사람들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어서 허무하거나 금기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 삶을 집중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것으로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예를들면 우리는 죽기전에 무엇인가를 이뤄놓고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산다고 한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죽으면 사라질 것들인 부와 성공을 위해 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 그날 그날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이 수천년동안 이어오니 그들은 좋은 날씨에 행복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맛있는 음식에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소확행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이런 것들때문에 행복할 수 있지만 이런 것에서 느끼는 행복은 사회 통념상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을 통한 행복이 아니기에 이런 것들로 인해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생각과 문화의 차이입니다. 머리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가슴으로 행동 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그렇게 강연의 이론은 이론이고, 실생활은 실생활이구나하고 2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문뜩 생각이 든게 있습니다.
작년 초 같은데요. 저도 행복에 대해서 느낀 일이 있습니다. 행복을 처음으로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강렬하고 인상이 깊었던 경험인지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1월에 약 일주일가량 사이판으로 가족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고된 일상생활에 재충전을 하러 간 여행인데도 불구하고, 여행에서 오는 피로와 의견 충돌로 인해 오는 스트레스, 한국에서 걸려오는 업무 전화때문에 여행이 완전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큰 맘먹고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갔던 여행인데 너무 실망스러웠고 여행 기간 내내 짜증도 많이 났습니다.
재충전은 커녕 일상생활때보다 더 힘든 노동과 스트레스를 앉고 가는 것 같은 기분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간 찍은 사진을 하나씩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기분과는 다르게 제 행복의 근원 중 하나인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티없게 웃고 있는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걸 한참을 보며 그런 사진들을 모아봤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은 사진들을 보고 이때 느꼈습니다. 행복이란게 "그간의 과정을 잊을 수 있게 하는 무엇인가 느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구나"하고 말입니다. 그게 부(富)일수도 있고, 저처럼 아이들의 미소 일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걸 얻었다 하더라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와서 보니 그때가 좋았다고 느끼는것 처럼 말입니다. 그때 알았야 하는 겁니다. 제가 만약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잤다면 그래서 아이들의 여행 사진을 모아서 보고 느끼지 못했다면 그때 그 여행은 제 기억에서 영영 사라졌을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불과 몇 시간의 비행기 안에서 본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느낀 감정이 일주일 내내 짜증스러웠던 감정을 몰아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몇시간의 짧지만 좋았던 기분이 일주일의 길지만 힘든 감정을 보상하고도 남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사람들처럼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하루 하루 작은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고, 지금부터라도 "아침에 날씨가 좋아서 오늘 하루가 너무 행복해~"라고 스스로 행복을 세뇌하면서 살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올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소확행이란, 대단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그냥 잠깐 잠깐 생각해 봤을때 '씌~익' 하고 미소지을 일들을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어쩌면 힘든 일을 잠깐 잊게 하는게 소확행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저는 하나의 습관이 생겼습니다. 저희 아파트는 아파트와 지하 주차장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지하에 주차를 하면 꽤 많이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후부터는 지상 주차장에 주차할 공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차장에 들어서면서 "나(아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야~"하고 말하면 한 자리가 비어 있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물론 없던 적이 더 많았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금새 잊어버리고 저와 우리 아이들의 기억엔 자리가 있던것들이 더 강하게 남아 있어 결국 저를 진짜 운좋은 사람(아빠)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살면서 좋은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많겠지만, 그건 과정이라 생각하고 잠깐의 미소지을 일을 생각하면서 나빴던 감정들을 상쇄하다보면 어느덧 힘들었던 일들을 모두 잊을 만한 좋은 일이 반드시 온다고 생각하며 사는게 제가 오늘 느낀 저만의 소확행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