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시간, 육아일기(5)

2025년 7월 30일 오전 10시 2분 50초..

by 글레이즈

아기 통장을 만들었다. 모바일 어플로 하지 않고 직접 은행에 방문해서 만들었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친정 엄마의 의견을 따른 것이었다. 엄마는 내게 손주의 백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통장을 개설하고 거기에 금반지 가격만큼의 돈을 입금해주고 싶다고 했다.


요즘은 핸드폰을 이용하는게 훨씬 편리하다며 여러 차례 설득했지만 나보다 30년 앞서 세상을 살아왔던 사람에게 더 이상의 설득은 무의미했고 나는 얌전히 은행 방문 시 필요한 서류를 검색하고 또 준비했다. 아기 명의의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도장.. 진작 만들었어야 했지만 내가 다쳐서 온 가족이 아기한테 쏟을 관심과 체력을 나한테 양분해줬어야 했고, 내가 조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탯줄도장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알아보고 만드느라 또 시간이 지체되었다.


어디 철학관에 돈을 주고받았다거나 양가 어른들의 의견을 들어서 만들었다거나 한 게 아니라 나랑 남편 둘이서 몇 날 며칠에 걸린 마라톤 회의 끝에 지은 아기 이름. 익숙하지만 왠지 쑥스럽기도 해서 등본에 있는 자녀 글자 옆에 써진 아기 이름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고 아기 명의로 받은 가족관계증명서 역시 너무나 신기해 또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다.


탯줄도장을 만들어보려고 인터넷으로 알아볼 때는 저렴한 건 2만 원대부터 비싼 건 10만 원대.. 나중에 알고 보니 더 비싼 것(20만 원대)도 있는 걸 보니 더 더 비싼 제품도 분명 있겠다 싶었다. 나는 그중 4만 원대의 적당히 예쁘고 가성비 좋다고 생각되는 제품을 선택했지만 아기의 첫 도장, 그것도 탯줄을 품은 도장이니 돈을 쓰려고 하면 얼마든지 쓰겠다 싶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럴 정도의 여건까지는 되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건 배송받은 탯줄도장은 DIY 제품으로, 도장 자체는 아기의 이름을 양각으로 파서 만들어져 왔지만 그 안에 홈이 나 있어 같이 배송된 주정과 경화제를 이용하여 탯줄을 3일 동안 굳히고 굳혀진 탯줄을 그 홈으로 넣어 도장을 완성하는 식이다. 왜 내가 내 돈을 지불하고 또다시 품을 팔아야 하는지 하는 의구심이 들긴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업체에 탯줄까지 넣은 도장을 요구하려면 탯줄을 택배로 부쳐야 했다. 그러면 또 탯줄을 포장하고 또 배송 중에 흠집이나 손상이 되지 않게 잘 여며서 보내야 하는데 그것도 귀찮고, 결정적으로 분명 나같이 업체로 탯줄을 보내서 도장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 업체 직원들이 탯줄들끼리 섞어서 보관하다 헷갈려서 남의 아기 탯줄로 내 아기 탯줄 도장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절대 보낼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뜬금없지만 저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MBTI에서 'N'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내가 'S'라고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N'이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상상이 된다.


그렇게 상상도 하고 만들기도 하고 발급도 받고 하면서 아기 통장을 만들 준비가 되어 엄마와 함께 은행에 방문했다. 전날에 은행 어플에서 번호표를 미리 발급할 수 있다는 걸 확인을 했는데도 당일에 병원도 가고 점심도 챙겨 먹고 한다고 깜박하고 은행에 도착해 버렸다. 내 앞에 있는 대기 팀은 6팀이었지만 나는 50분을 대기했다. 분명 인터넷으로 어떤 통장으로 만들지도 다 알아보고 갔는데도 적금 통장은 아기가 아니라 부모 명의로 개설해야 이율이 더 높다는 말에 아차 싶어 얼른 적금은 내 명의로 해버렸다.


무수히 많은 서류들에 내 이름과 남편 이름, 아기 이름을 번갈아 서명해 나간 끝에 통장 두 개를 받았다. 가족뱅킹으로 모바일 뱅킹을 신청하면 추가 이율 혜택이 있대서 신청했는데 어플로 들어갔을 때 아기 이름이 따로 뜨거나 하는 다른 점이 안 보이길래 창구 직원에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니 그 부분은 아기 명의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한다. 아니 갓난쟁이 명의 통장을 만드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당연히 모바일 뱅킹을 사용하지 왜 진작 물어보기 전에 공인인증서 발급 여부를 나에게 묻지 않았는지 짜증이 조금 났지만 참고, 그것도 발급받겠다고 했다.


귀여운 캐릭터가 나와있는 통장 앞면에 아기 이름이 적혀있는 걸 보니 괜히 내가 다 설레고 막 있는 돈 없는 돈 다 이 통장으로 송금해주고 싶었지만 역시나 그럴 정도의 여건까지는 되지 않기에 참았다. 가능한 범위에서 열심히 차곡차곡 쌓아주다가 나중에 아기가 '돈'이라는 개념을 알 만한 나이가 되면 그때는 같이 손잡고 서류 떼러 다니고 은행에도 가서 통장을 만들어 줄 생각이다. 당연히 모바일 뱅킹도 알려주려고 한다. 요즘 세상이 이 정도니 아기가 컸을 때는 더 '스마트'한 세상이 됐겠지.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알려주고 싶은데 마음만 급하지 집에 와서 보는 아기는 아직 침대 위에서 꼬물대며 "똥"이라는 단어에 꺄르르 웃는 젖먹이일 뿐이다. 오늘도 웃으며 노래 책을 꺼내 노래를 틀고 책을 펼쳐가며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사랑해. 우리 아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루 1시간, 육아일기(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