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9일 오후 10시 57분 34초..
나는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취업을 한 뒤 해외여행을 1년에 한 번 이상씩 꼭 나갔고, 국내여행도 자주 다녔다. 꼭 여행 목적이 아니더라도 일하다가 숨이 막힐 때면 부산역 기차표를 끊고 해운대나 광안리를 가서 코에 바닷바람을 쐬고 오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물 비린내 난다며 싫어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 물 비린내가 좋아서 일부러 바다 짠내음을 코로 더 흡입하려고 킁킁대기도 했다. 냄새가 진할수록 우울한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나서도 집돌이인 남편을 졸라 여행을 많이 다녔다. 해외여행은 한 번도 안 가봤다며 그리고 관심도 없다며 극구 사양하는 남편을 갖은 설득 끝에 해외도 한 번 같이 다녀왔다(코로나 시국에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국외가 아닌 국내로 갔다 왔다). 임신하고서도 태교여행을 가야 한다며 이곳저곳 많이 다녔다. 배가 점점 불러와 부담됐지만 그래도 기운 넘치게 즐겁게 전국을 누볐다.
출산 후에는 다치기도 하고 갓난아기 육아도 해야 돼서 여행은 꿈도 못 꿨다. 사실 내가 그동안 다녔던 걸 생각한다면 출산 후에 다치는 일이 없이 무사히 육아에 돌입했으면 벌써 시댁이 있는 부산에 '시댁에 아기 보여드리러 간다'는 핑계로라도 아기 데리고 남편과 다녀왔을 거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장 집 앞 산책도 재활운동이 되는 판에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갈 생각을 할까.
그런데 이제는 이따금씩 바다가 그리워지고 있다. 조금은 많이 걸어 다닐 자신이 생긴 셈이다. 하지만 하염없이 걷는 코스는 역시나 자신이 없고 그리고 나한테 위험하다(갑자기 너무 지쳐서 쉬어야 할 때 잠시 앉아갈 벤치 하나 없는, 그 흔한 카페 하나 없는 곳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종일 서서 가야 할 것 같은 전철 역시 나에게 쥐약이다. 따라서 우리 집에서 먼 고속버스터미널이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가는 것보다는 그나마 가까운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여행지를 갔다 오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이 생각은 내가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하는 모습을 보이자 남편이 근처 호캉스라도 다녀오겠냐는 제안에 '나는 호캉스보다 여행이 좋아'라고 답하면서 남편이 '그럼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던가'라고 화답하면서 시작되었다. 물 만난 물고기마냥 얼굴이 벌게져서 어디를 갈지 검색에 여념이 없는 내게 남편이 질린 표정으로 정말 갈 거냐며 갑자기 되묻는다.
사실 이유식도 먹고 있고 아직 알레르기 테스트도 안 끝난 상태에다가 배송 올게 몇 가지 있고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있는 한 주여서 나도 막 좋다고 나대기에는 무리가 있긴 하다. 게다가 이제는 밤에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아기 엉덩이나 손, 발이 안 보이면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기가 날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굉장히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여행 간 걸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마음이 불편해서 여행을 온전히 즐기고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몇 시간 정도 여행지를 열심히 검색 후 남편에게 가서 얘기를 했더니 금세 얼굴이 밝아지는 게 참 솔직한 사람이다 싶다. 본인도 가라고 해놓고 아차 싶었겠지. 그러면서도 자정에 예약해서 저렴하게 숙소 예약이 가능하니 가려면 그전에 어느 숙소를 갈지 정하는 게 좋다고 덧붙여준다.
그래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나는 아무래도 아날로그적 인간인 것 같은 게 핸드폰이 아무리 편해도 이렇게 뭔가 찾거나 길게 써야 하거나 하면 컴퓨터 모니터 앞이 훨씬 편하다(우리 집 모니터 크기가 크긴 하다). 와. 어디 가지. 바다 볼 거면 강릉, 속초, 부산 일단 이렇게 좁혀지는데 과연 어디가 좋을까. 왠지 지금 남편이 다른 방에 있지만 안 봐도 표정이 어떨지 대충 알 거 같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