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시간, 육아일기(30)

2025년 11월 11일 오후 9시 10분 1초..

by 글레이즈

결국 부산에 왔다. 진짜 오래간만이다. 이렇게 혼자 내려온 건. 하염없이 광안리 바닷가를 누비다 숙소 앞에 도착하니 괜히 다리가 아픈 것 같았다. 원래는 숙소에 짐을 풀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바로 나와서 다시 바다를 걷든 이른 저녁을 챙기든 하려고 했는데 막상 침대에 누우니 몸이 본드 붙인 것마냥 딱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누운 김에 잘까 싶다가 조금 아까운 기분에 스트레칭을 하면서 근래의 나의 삶을 반추해 보았다.


친정식구들과의 관계를 돌이켜보면 나는 사실 어렸을 때 소아 우울증이 왔고 그게 어른이 되서까지 꽤 오래 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편은 내가 부모에게서 정서적 독립이 제대로 안된 것 같고, 남이 상처받을까 두려워 더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방법을 대체로 사용하는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머리로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막상 이해하고 넘겨보려고 하니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아기를 돌볼 때면 으레 기분이 밝아지고 희망찬 미래가 그려지는데 거기에 내 지난 어린 시절을 대입해서 바라보면 굉장히 암담하다. 나 스스로 내가 잘 큰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내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이따금씩 여행을 급작스럽게 계획하고 떠나고 하는 것은 사실 현실에서의 도피성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결론이 들었다. 직장 동료들에게는 '사무실에서 멀면 멀수록 좋다'라고 했고,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코에 바람 쐬고 싶어서 갔다'라고 했고, 나 스스로에게는 '역시 여행 오니까 살 것 같다'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얼마나 힘든 나날을 지내왔던 걸까. 취업 준비 중에는 취업을 위한 공부에, 취업 후에는 다사다난한 업무에,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들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에 파묻혀 정작 나란 존재가 서있는 공간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는 걸 나는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살면서 나를 내가 제삼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데 첫 육아를 시작해 내 분신 같은 아기를 몇 달간 키우다가 이렇듯 혼자 먼 곳으로 여행을 와서 보니 나에 대해서 평소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취업 준비가 길어지면서 심하지 않은 가벼운 우울감이 꽤 오래 지속되었었고, 그 감정은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을라치면 폭발적인 과소비나 예기치 않게 과식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 이상행동은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그래도 아기를 가지고, 낳고 나서부터는 아무래도 하루 종일 집중해서 돌봐도 여전히 아기에게 돌봐줄 부분이 너무 많아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체력이 떨어져 거의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과하게 생각하고(한때 내가 PESM증후군이 아닐까 의심해 본 적이 있다), 과하게 행동하고(무리해서 운동하거나 무리해서 먹는다), 과하게 말하고(본심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통제가 안되고 직설적으로 말해버릴 때가 있다) 하는 것들이 사실 내가 우울하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은 게 아닐까 하고 바라보게 된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지만 나에 대해 파고들수록 내가 굉장히 불완전하다는 것에 많이 슬프고 안타깝다. 내 아기를 돌보기 전에 내 안에 있는 '어린 나'를 먼저 돌봐야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찌 됐건 그 선택을 한 건 나'고, 상황이 여의치 않거나 나랑 저 사람이 안 맞으면 내가 그냥 '포기'하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들은 오직 모든 게 내 안에서 곪아서 터지게 만들어버리는 것뿐이고 나는 아무것도 좋아지거나 해결된 게 없는 거다. 계속해서 이런 생각들을 반복하고 곱씹는 건 괴롭지만 안 하면 언제까지고 이 상황은 반복되고 나는 상처 입을 뿐이다. '육아일기'란 사실 '내 안의 아기'를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한 언어유희 같다. 나는 브런치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한 후로 실제로 우울감이 많이 감소됐다. 내 나름의 고해성사 같기도 하고 옛날 말로 교환일기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꾸준히 쓰다 보면 어느 순간에 확 좋아지지 않을까 하고 바라본다.


숙소에서 쉬면서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당장 아기를 바꿔달라고 했는데 화면 속 내 얼굴이 낯설은지 계속 노려보다가 갑자기 울어버렸다. 그걸 보고 정신이 퍼뜩 들어 전화를 끊고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일기다.








작가의 이전글하루 1시간, 육아일기(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