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잣대만큼만 세상을 재단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낡은 속담이 시대를 초월해 유효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물 바닥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고작 손바닥만 한 동그라미에 불과합니다. 만약 누군가 개구리에게 "진짜 하늘은 형태가 없고 끝없이 광활하다"고 말해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십중팔구 그를 미치광이나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울 것입니다. 자신이 평생 두 눈으로 확인해 온 '동그란 하늘'만이 유일하고 완벽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단단하게 굳어진 맹신은 다른 생각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합니다. 무서운 점은, 자신이 틀렸다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결코 그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그들은 낯선 진실을 자신의 왜곡된 세계관에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해 기형적인 방어기제를 발동합니다. 가장 쉽고 흔한 방법은 타인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이를 위선자나 거짓말쟁이로 깎아내려야만 비로소 그들의 마음은 평온을 되찾습니다.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오직 자신의 입맛에 맞는 호응을 해주는 이들에게만 좁은 틈을 허락합니다. 하지만 그 알량한 관계조차 언제든 적으로 돌변할 수 있기에, 안타깝게도 그들의 곁에는 진실한 우군이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됩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늘 자신이 옳아야 하기에, 이를 증명하고자 타인을 짓밟는 행위조차 '정의'로 포장하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을 둘러싼 우물이 무너지고 진짜 광활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안타깝게도 그들은 깨어진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더 깊고 어두운 그늘 속으로 숨어버리는 길을 택합니다. 과거의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으로 도망쳐, 또 다른 우물을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곳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을 지켜보며 저는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나는 과연 다른가?' 단언컨대 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저도 언제든 틀릴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오랜 시간 쌓아온 신념이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고 속이 쓰린 일입니다. 하지만 그 불편한 감정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용기를 내어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꽉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것을 경험합니다. 인정은 결코 부끄러운 굴복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세상을 하나 더 배우게 되는 경이로운 성장의 과정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영원히, 매 순간 옳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 단순하고도 거대한 이치를 받아들이면 내 안의 오류를 인정하는 일이 한결 쉬워집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보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이 백배는 더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가 굳게 믿고 있는 경험의 틀, 그 안락한 우물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물 밖의 진짜 광활한 하늘을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