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불신의 투명한 막을 걷어내고 다시 사람속으로

by 오종민

어린 시절만 해도 동네 어른들을 마주치면 인사하기 바빴고, 우스갯소리로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고 하던 정겨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같은 아파트 주민과 엘리베이터에 단둘이 남게 되면, 가벼운 눈인사 대신 슬며시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곤 합니다. 누군가 호의로 다가와 말을 건네도 몸은 움찔하고, 머릿속엔 '나한테 말을 거는 이유가 뭐지?', '뭘 팔려는 건가, 아니면 혹시 사기인가?' 하는 의심이 꼬리를 뭅니다. 우리 삶에서 서서히 '믿음'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걸까요? 가장 큰 원인은 타인의 선의를 악용하는 소수의 사람들 때문일 것입니다.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당한 뼈아픈 경험이 깊은 상처로 남기도 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베푼 도움이 적반하장의 태도로 돌아올까 봐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속 편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면서 이런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스팸 문자와, 무심코 누른 출처 불명의 링크 하나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 등 일상 곳곳에 너무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언제 맹수가 튀어나올지 몰라 매 순간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던 원시시대처럼, 현대인들은 사람이라는 맹수를 경계하며 살아갑니다. 직장 동료나 친구 사이에서조차 대가 없는 호의를 받으면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라며 방어막부터 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고 싶을 때도 상대가 내 의도를 오해할까 봐 망설이다 결국 선뜻 나서지 못합니다.


매일 쏟아지는 미디어 속의 수많은 배신과 사기극에 노출된 탓인지, 영화나 드라마 속 평화로운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도 '저러다 곧 뒤통수를 치겠지'라며 의심의 싹을 틔웁니다. 나 자신조차 완벽히 믿기 힘든 이 삭막한 사회에서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마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이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사회 전체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의 선한 영향력과 미담을 더 많이 조명해야 하겠지만, 결국 변화의 시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보려는' 우리 각자의 용기에 달려있습니다.


물론 금전적인 거래나 사이버상의 위협 앞에서는 철저한 경계와 냉정한 판단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큼은, 설령 상처를 받더라도 일단 믿음의 문을 열어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를 속인 그 사람이 나쁜 것이지, 사람을 믿은 내가 바보 같았던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심장이 뛰는 즐겁고 따뜻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타인과 마음을 나누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선한 믿음의 씨앗이 하나둘 퍼져나갈 때, 우리는 스스로 쳐둔 불신의 투명한 막을 걷어내고 다시 환한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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