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에 지원할 무렵, 나는 오랫동안 나의 콤플렉스였던 부러진 앞니를 브릿지 공법으로 고쳤다. 단지 이 하나를 해넣은 것뿐이지만, 6년 사춘기를 함께한 녀석과 이별하는 기분은 생각보다 후련했다. 거울 속 나의 얼굴엔 시원함과 함께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가득했다. 비록 최종 합격은 하지 못했지만, 해군사관학교의 필기와 실기 시험에 모두 통과한 건 내 19년 인생 최초의 '성공 경험'이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이빨과 합격—은 바닥까지 추락해 있던 내 자존감에 다시 날개를 달아주었다.
중·고등학교 6년간의 나는, 나 스스로 보기에도 참 초라했다. 내성적이고 친구도 거의 없었고, 공부나 운동도 시작도 전에 포기하곤 했다. ‘어차피 난 못하는 애니까.’ 이 생각이 늘 머릿속을 잠식했고, 실제 성적도 그에 걸맞게 바닥을 쳤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한 친구 덕에 수학과 영어에 흥미를 붙이게 되었고, 그 두 과목만큼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가 가진 열등감을 완전히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중 이빨을 고친 일과 해군사관학교 시험 합격은 내 안의 변화 가능성에 불을 지핀 사건이었다. 아주 작은 불씨였지만, 그것은 충분히 강했다.
어렵사리 진학한 대학이었지만, 자신감이 붙으니 시작부터 모든 게 달랐다. 첫 학기 평점 3.8을 받으며 장학금을 탔다. 그 순간부터 ‘우리 과 공부 잘하는 애’가 되어버렸다. 성적 우수자라는 타이틀과 사람들의 기대 섞인 시선은 처음 느껴보는 짜릿한 감정이었다.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나와 잘 맞는 것인지, 아니면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 나의 성격도 점점 외향적으로 바뀌어 갔다. 친구 사귀기를 두려워했지만 금세 친한 친구들을 사귀었고, 지금까지도 그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처럼, 붙은 자신감은 내 삶의 여러 부분을 변화시켰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성적은 더 올랐고, 동아리에 가입해 활발히 활동했다. 후배들은 나에게 ‘암기 대마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내가 쓴 리포트는 몇 년간 과 족보로 회자되며 졸업 이후까지 전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돈 받고 팔 걸 그랬다.
공부만 잘한 것도 아니었다. 당구와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살았고, 의외로 재능이 있었다. 예전엔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건 내 스스로 만든 틀일 뿐이었다. 내 생각이 내 잠재력을 억눌렀던 것이다. 공부든, 운동이든, 성격이든, 모든 것이 그랬다. 생각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내 삶은 두루마리 휴지처럼 술술 풀려나갔다. 과도한 자신감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 반대 역시 조심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때는 모든 일이 앞으로도 잘 풀려갈 것만 같았다.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