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의 깃처럼 각 잡힌 보도자료.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경찰의 활약상을 알리려면 그 엄격하고 정형화된 틀에 무조건 맞춰야만 했다. 잣대를 벗어나면 아무리 훌륭한 미담이라도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경찰 홍보는 늘 뻔한 선행이나 딱딱한 간담회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페이스북'이라는 녀석은 완전히 달랐다. 정해진 틀도, '이렇게 해라' 지시하는 매뉴얼도 없는 날것의 공간이었다. 내 눈엔 담당자의 기획력과 순수한 역량만으로 무궁무진한 보물을 캐낼 수 있는 엘도라도(El Dorado)처럼 보였다.
하지만 초창기 경찰관서들의 SNS는 여전히 구시대적이었다. "OO경찰서에서는 O월 O일 O시경…" 식의 딱딱한 사건 개요에 밋밋한 현장 사진 한 장을 툭 던져놓는 게 전부였다. '좋아요' 수가 한 자릿수를 맴도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그게 참을 수 없이 싫었다. 모처럼 얻은 이 자유로운 공간에서만큼은 무거운 제복을 살짝 벗어두고, 우리 경찰서의 사람 냄새 나는 일상을 편안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천만다행(?)으로 당시 서장님을 비롯한 지휘부는 SNS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간섭할 상사가 없다는 것, 즉 내 입맛대로 마음껏 요리할 수 있는 완벽한 무대가 열린 것이다.
가장 먼저 손댄 것은 프로필과 이름이었다. 전국 경찰서 십중팔구는 딱딱한 '참수리 마크'를 내걸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도 부천 오정경찰서가 '오정'과 발음이 비슷한 '오징어'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 쓰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오징어도 저렇게 활약하는데, 밀양의 옛 이름인 순우리말 용(미르)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나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지인을 졸라 경찰 제복을 입은 귀여운 용 캐릭터 '미르'를 탄생시켰다. 딱딱한 참수리 대신 친근한 미르가 인사를 건네자,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달라졌다.
껍데기를 바꿨으니 이제 알맹이를 채울 차례였다. '도대체 뭘 올려야 사람들이 우리와 즐겁게 놀아줄까?' 며칠을 끙끙대다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사람들은 경찰의 진짜 모습을 모른다. 그러니 그냥 우리의 모든 것을 여과 없이 보여주자.'
하루에 무조건 게시물 하나를 올린다는 철칙을 세우고, 하이에나처럼 경찰서 구석구석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갓 부임해 잔뜩 긴장한 신임 순경의 굳은 얼굴, 강력계 형사들의 믹스커피 타임, 구내식당의 점심 메뉴, 심지어 화단에 핀 꽃까지. "경찰도 당신들과 똑같이 밥 먹고 웃는 사람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아 일상을 연재하자 방문자 수는 눈에 띄게 불어났다.
물론 매일이 축제는 아니었다. 어떤 날은 좋아요가 10개에 그치고, 어떤 날은 100개를 훌쩍 넘겼다. '대체 차이가 뭘까?' 오기가 생겨 게시물 데이터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분석 결과, SNS라는 야생에도 나름의 생존 법칙이 숨어 있었다. 직장인들이 스마트폰을 켜는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공략하는 타이밍, 피드 상단으로 끌어올리는 알고리즘의 이해, 딱딱한 법률 용어 대신 스토리텔링으로 풀어쓰기, 그리고 정성 어린 댓글 소통까지. 나는 이 법칙들을 모아 '밀양 경찰서 홍보 매뉴얼'을 만들었고,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기꺼이 노하우를 공유했다.
어느새 밀양서 페이스북은 평균 '좋아요' 200~300개를 거뜬히 넘기며 본청 홍보실의 주목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국 각지의 초보 홍보 담당자들에게 내 요령을 전수하며, 솔직히 속으로 '이 분야에선 내가 최고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오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부산경찰' 페이스북이 혜성처럼, 아니 거대한 해일처럼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기발한 기획력과 탄탄한 인프라를 무기로 순식간에 좋아요 10만, 20만을 달성하며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생태계의 포식자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허탈했다. 내가 애써 개척해 놓은 땅에서 남이 황금을 캐낸 것만 같은 묘한 상실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질투라기보단, 개인의 열정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시스템의 간극'에 대한 처절한 깨달음이었다. 나는 내 한계를 담백하게 인정했다. 후회는 단 1그램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며 밤낮으로 고민했던 그 치열한 시간들과, 나만의 '미르'를 아껴주던 사람들의 온기는 진짜였으니까.
조직의 틀 안에서 1등이 되는 것은 실패했지만, 나는 그 경험을 자양분 삼아 내 시선을 더 넓은 곳으로 돌렸다. 기관의 입이 아닌 '나'라는 개인의 SNS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접속하며 경찰서 담장 너머의 또 다른 세상으로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다. 끝인 줄 알았던 그 한계점이, 사실은 더 큰 무대로 나를 밀어 올리는 새로운 도약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