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강의의 여운은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렀다. 계속해서 그날의 내 모습과 청중의 박수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잘했다는 말도 들었지만, 스스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입직한 지 7년이 지났지만, 경찰청 내부 게시판을 유심히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와는 관계없는 공간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게시판이 눈에 들어왔고, 무심코 클릭한 게시물 하나가 나를 멈춰 세웠다.
‘학습리더 5기 모집 공고문’
‘학습리더? 이게 뭐지?’
궁금한 마음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내 학습 모임을 이끌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리던 중, 순간 숨이 멎는 듯 깜짝 놀랐다. 내가 간절히 배우고 싶어 했던 내용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강의 기법, 코칭 기법, 퍼실리테이션 기법’
망설임 없이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지원 동기란에는 나의 간절함을 진심으로, 애절하게 담아냈다. 일주일 뒤,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었고 내 이름이 그 안에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이렇게 우연히 찾아온 기회 속에 내가 오랫동안 바라던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수많은 기회들이 내 앞을 스쳐갔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것을 보려 하지 않았을 뿐. 결국, 간절함이 기회를 잡게 만든 것 같았다.
학습리더 교육은 아산 경찰 교육원에서 일주일간 진행되었다.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선 각자가 하나씩 강의 주제를 준비해야 했다. 나는 당연히 ‘SNS 홍보 방법’을 주제로 정했다. 교육생은 총 30명, 6명씩 5개 조로 나뉘어 교육을 받았다. 처음 다른 교육생들을 마주했을 때는 긴장이 확 밀려왔다. 전국에서 선발된 이들이라 그런지 모두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령대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교육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다. 강의 기법은 물론, 다양한 실습을 통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마음껏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교육생들의 열정이 대단했다. 수업이 끝난 밤에도 많은 이들이 강의실에 남아 노트북을 펴고 과제를 준비했다.
과제는 자신의 강의자료를 8분 이내로 압축해 발표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 분량을 8분 안에 담아내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도무지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글쓰기도 그렇지만, 뺄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직접 해보니 그 말이 정말 실감 났다. 고심 끝에 발표 자료를 완성했지만, 연습해 보니 10분은 훌쩍 넘길 것 같았다.
마지막 날, 하루 종일 과제 발표가 이어졌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는지 대부분의 교육생이 10분을 넘겨버렸다. 속으로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기존에 강의 경험이 있어 보이는 몇몇 교육생만 8분 안에 발표를 마쳤는데, 그들의 발표는 정말 깔끔하고 명료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특히 우리 조에 있던 한 교육생의 발표가 인상 깊었다. 발표를 마친 그가 내게 말했다. “강사는 8분이든 5분이든, 주어진 시간 안에 반드시 맞출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정말 멋있어 보였다. 결국 나도 발표에서 10분을 넘겨버리고 말았지만, 그 말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날 발표 중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 30명의 교육생 중 8명이 같은 주제를 선택했는데, 바로 ‘멘토-멘티’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한 번도 ‘멘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들의 발표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좋은 멘토가 있었더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더 일찍 찾을 수 있었을까?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을 후배들에게 전해줄 수는 없을까?’ 때마침 교육을 받기 일주일 전, 신임순경 4명이 새로 발령을 받아 왔다. 그들과 함께 학습모임을 만들어보는 것도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경찰서로 복귀하자마자, 나는 그날의 마음을 실행에 옮겼다. 신임순경 4명에게 카톡을 보냈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진심이 담긴 마음에서 출발한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