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전국구 열정꾼들 사이에서 찾은 나의 다음 스텝

by 오종민

첫 강의가 끝난 뒤에도 여운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의 내 모습과 청중의 쏟아지는 박수 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다들 잘했다고 치켜세워 주었지만, 내 속은 달랐다. 스스로 채우지 못한 부족함이 묘한 갈증으로 남아 계속 목을 태우고 있었다.


입직한 지 어느덧 7년. 그동안 나는 경찰청 내부 망의 교육 게시판을 단 한 번도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현장 뛰기 바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무언가에 홀린 듯 무심코 클릭한 게시물 하나가 내 시선을 단번에 낚아챘다. ‘학습리더 5기 모집 공고’


‘학습리더? 이게 대체 뭐지?’ 호기심에 스크롤을 내리던 나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곳엔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 갈구하던 단어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강의 기법, 코칭 기법, 퍼실리테이션 기법.’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 밤, 지원서 빈칸에 나의 간절함과 목마름을 꾹꾹 눌러 담아 전송했다.


일주일 뒤,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이란! 동시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깨달음이 스쳤다. ‘어쩌면 지금까지 수많은 기회가 내 코앞을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저 내 눈이 닫혀 있어 보지 못했을 뿐.’ 결국, 기회를 낚아채는 것은 다름 아닌 '간절함'이었다.


교육은 충남 아산의 경찰 교육원에서 일주일간 합숙으로 진행됐다. 교육생은 총 30명. 전국 각지에서 선발되어 온 20대부터 50대까지의 얼굴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눈빛부터 예사롭지 않은, 그야말로 각 지역의 ‘난다 긴다’ 하는 열정꾼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수준은 내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단순히 말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실전 기술들이 쏟아졌다. 가장 놀라운 것은 동기들의 열기였다. 정규 수업이 끝난 깊은 밤에도, 텅 빈 강의실 곳곳에서는 노트북 불빛을 밝힌 채 과제에 매달리는 이들의 타자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를 가장 괴롭힌 과제는 ‘나만의 강의안을 8분 이내로 압축해 발표하기’였다. 한 시간짜리 분량을 단 8분에 욱여넣으려니 미칠 노릇이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기준이 서지 않았다. 글쓰기에서도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하더니, 무대 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밤을 새워가며 덜어내고 또 덜어냈지만, 리허설을 해보면 야속하게도 타이머는 늘 10분을 훌쩍 넘겨버렸다.


대망의 마지막 날, 하루 종일 발표가 이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만 헤맨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교육생이 시간 조절에 실패해 10분을 넘겼고, 나는 속으로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때, 몇 번의 강의 경험이 있다던 우리 조의 한 교육생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전개로 정확히 8분 만에 발표를 마쳤다. 감탄하는 내게, 자리로 돌아온 그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강사는 8분이 주어지든 5분이 주어지든, 그 시간 안에 자신의 메시지를 완벽히 맞춰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깊은 울림이었다. 비록 내 발표는 이번에도 10분을 넘기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 한마디는 내 가슴속에 ‘프로의 기준’이라는 선명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그날 내 마음을 때린 충격은 하나 더 있었다. 30명의 교육생 중 무려 8명이나 ‘멘토와 멘티’라는 동일한 주제로 발표를 한 것이다. 나는 경찰 생활 7년 동안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발표를 듣는 내내 묘한 부채감이 밀려왔다. ‘내게도 길을 알려주는 좋은 멘토가 있었다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더 일찍 찾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내가 받지 못했던 그 안내자의 역할을 이제 막 들어온 후배들에게 내어줄 수는 없을까?’


운명처럼, 교육을 오기 일주일 전 우리 서에는 갓 부임한 신임 순경 4명이 있었다. 잔뜩 긴장해 있던 그들의 풋풋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거창할 것 없이 그 친구들과 작은 학습 모임부터 시작해 보자.’ 일주일의 벅찬 여정을 마치고 경찰서로 복귀한 날. 나는 짐을 풀기도 전에 휴대폰을 꺼내 신임 순경 4명을 초대해 단톡방을 만들었다. “반갑습니다. 혹시 저랑 같이 재미있는 공부 한번 해보지 않을래요?”


손가락 끝에서 출발한 작은 메시지였지만, 그것은 내 안의 간절함이 '나'를 넘어 '타인'을 향해 뻗어나간 첫 번째 질주였다.

매거진의 이전글59. 스쳐간 인연과 즐거운 취미가 만나 완성된 6만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