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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원칙과 온기 사이에서

by 오박사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던져볼 만한 질문이다. 특히 내가 몸담고 있는 경찰이라는 조직은, 마주치는 사람들의 특성상 많은 혼란과 회의를 느끼게 만든다.


현장의 80%는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도와주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처음부터 주먹을 휘두르거나 1~2시간 동안 붙잡고 늘어질 때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밀려온다.


경찰은 체포 권한이 있다. 그래서 '거리의 판사'라고도 불린다. 한순간의 판단으로 누군가를 전과자로 만들 수도 있기에, 그 결정은 늘 신중해야 한다. 특히 술에 취한 사람을 마주할 때 그 고민은 더 깊어진다. 욕설을 하고 경찰을 밀쳐도, 우리도 사람이기에 화가 올라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땐 가장 쉬운 선택이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종종 ‘술이 죄지, 사람이 무슨 죄냐’는 마음으로 욕설을 견뎌낸다. 그리고 대부분은 다음 날 순한 양이 되어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럴 때면 ‘어제 잘 참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MZ세대 경찰관들은 법과 원칙을 중시한다. 그래서 술에 취한 사람도 원칙대로 체포하려는 경향이 크다.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몇 분만 더 참으면 그들이 수그러든다는 걸 알기에 말벗이 되어주려 한다. 그들의 눈에 비친 외로움이 보여서다.


거리에서 술에 취해 나뒹구는 사람들 대부분은 혼자다. 그들은 스스로가 사회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낀다.
그런 이들을 마주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경찰은 단지 법을 집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동아줄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그들을 체포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으로 바라보려 한다. 내가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내가 마음먹은 만큼, 몇 사람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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