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세상을 멈춰 세웠다. 일상으로 급격히 스며든 ‘언택트(Untact)’라는 낯선 파도는 내 가슴을 뛰게 하던 오프라인 강의실의 문마저 굳게 닫아버렸다. 경찰청 역시 모든 집합 교육을 전면 중단하고, 온라인 재택 교육 시스템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었지만, 경찰청 사내 강사로 활동하던 내게 그것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나의 강의는 철저히 '호흡' 중심이었다. 교육생들의 눈빛을 읽고, 질문을 던지고, 현장의 공기를 쥐락펴락하는 티키타카가 내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런데 모니터 너머의 텅 빈 허공에 대고 떠들어야 하는 '줌(Zoom)' 강의라니. "어떻게 해야 대면 강의의 텐션을 이 좁은 화면 속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을까?"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무관심'이었다. 모니터만 켜둔 채 딴짓을 하기 십상인 온라인 환경 특성상, 침묵하는 검은 화면들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고민 끝에 나는 돌파구를 찾았다. 복잡한 시스템 대신, 가장 직관적인 '채팅'과 '원초적인 손가락 제스처'로 그들의 반응을 강제로라도 끌어내는 것이었다.
결전의 첫 강의 날. 나는 20분 일찍 텅 빈 온라인 스튜디오 부스에 도착했다. 접속자 명단에는 이미 10명 남짓이 들어와 있었지만, 화면은 모두 까맣게 꺼져 있었다. 다행히 내 카메라와 마이크도 꺼져 있어, 바짝 긴장한 내 얼굴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깊은 심호흡으로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자료를 세팅했다.
시작 5분 전, 드디어 카메라의 붉은 불빛이 들어왔다. "자, 이제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자리에 계신 분들은 잠시만 화면을 켜주시겠습니까?" 나의 안내에 잠시 후 하나둘 검은 장막이 걷히며 30명의 낯선 얼굴들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하울링을 막기 위해 그들의 마이크는 모두 음소거된 상태였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나는 준비한 첫 번째 미션을 던졌다. "제 목소리가 잘 들리시면, 머리 위로 크게 동그라미 표시를 해주시겠습니까?"
순간, 뻣뻣하게 굳어 있던 화면 속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팔을 들어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종이에 큼지막하게 'O'를 그려서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다. 랜선 너머의 체온이 모니터를 뚫고 전해지는 듯했다. 그 귀여운(?) 화답을 보는 순간, 팽팽했던 긴장감이 스르르 풀리며 묘한 자신감이 차올랐다.
간단한 소개를 마친 뒤, 나는 본격적으로 판을 깔았다. "마이크가 꺼져 있으니, 대답은 짧게 두세 글자로 채팅창에 남겨주시면 됩니다. 채팅이 번거로우신 분들은 화면에 손가락으로 1번, 2번을 표시해 주세요. 아, 그리고 오늘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면 강의가 조금 더 '일찍'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일찍'이라는 마법의 단어에 화면 곳곳에서 소리 없는 웃음이 터졌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손가락 신호는 명확했고, 채팅창은 실시간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나는 모니터에 코를 박듯 다가가 그들의 아이디와 메시지를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어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내 이름이 불리자 교육생들의 참여도는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나는 강사를 넘어 마치 1인 방송을 진행하는 능청스러운 VJ가 된 듯했다.
물론 에너지 소모는 대면 강의의 두 배 이상이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침묵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했던 난관은 없었다. 강의를 마칠 무렵,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화면 속 사람들은 활짝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고, 채팅창에는 '좋은 강의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따봉' 이모티콘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첫 온라인 강의의 짜릿한 승리였다.
이후로도 수많은 온라인 강의를 거치며, 나는 화면 너머의 침묵에도 당황하지 않고 나 혼자서도 능청스럽게 원맨쇼를 이어갈 수 있는 단단한 맷집을 얻었다.
하지만 아무리 언택트 환경에 완벽히 적응했다 해도, 내 마음속 1순위는 여전히 현장에서 호흡하는 '대면 강의'다. 모니터 너머의 픽셀이 아무리 선명해도, 사람의 눈을 직접 맞추고 미세한 떨림과 표정을 읽어내며 섞이는 진짜 체온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차가운 AI와 비대면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해도,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따뜻한 '온기'라는 사실을 나는 텅 빈 부스 안에서 역설적으로 깨달았다. 시대의 변화는 두려웠지만, 그 거센 파도 위에서 또 다른 나의 가능성을 발견한 참으로 가슴 뛰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