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화면을 찢고 나온 야생마처럼 다시 날뛰다

by 오종민

코로나19라는 캄캄한 터널은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호흡하는 강사에게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차가운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며 허공에 대고 말을 쏟아내야 했던 2년. 화면 너머로 딴짓을 하거나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수강생들을 볼 때면 기운이 밑바닥까지 빠져나갔다. 방구석 VJ가 된 듯한 묘한 신선함도 잠시, 오프라인의 짜릿한 공백이 길어질수록 내 안에는 서늘한 불안감이 똬리를 틀었다. '내 강의 감각이 이대로 완전히 무뎌지는 건 아닐까?'


그러던 2022년, 마침내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사람의 체온을 마주할 수 있는 대면 강의의 빗장이 풀렸다. 재개 두 달째로 접어들던 평범한 어느 날, 휴대폰 액정에 '055'로 시작하는 번호가 깜빡였다. 경남 지역번호. 순간 등줄기에 찌릿한 전기가 스쳤다. '왔구나!'


"경남교육연수원입니다." 수화기 너머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억눌려 있던 가슴이 사정없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강의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사람의 온기와 눈빛이 미치도록 그리웠던 탓일까. 하루가 1년 같았던 그 한 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맹렬하면서도 더디게 흘러간 시간이었다.


대망의 강의 당일. 설렘에 밤잠을 설쳤음에도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부산에서 차를 몰아 창원대학교 뒤편 연수원에 30분이나 일찍 당도했다. 복도에서 앞 시간 강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20분, 가슴은 터질 듯 요동쳤다. 행여나 수강생들에게 이 떨림을 들킬까 봐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넥타이를 고쳐 맸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지금 내 심장을 강타하는 이 거친 박동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탁 트인 초원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 '야생마'의 끓어오르는 피였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강단에 서자 50여 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흩어진 시선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책상에 엎드린 사람, 휴대폰을 보는 사람,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는 사람. 나는 깊은 심호흡으로 폐부에 현장의 공기를 가득 채운 뒤, 가벼운 농담으로 포문을 열었다.


"하하하!" 객석 곳곳에서 픽 하고 터지는 웃음소리. 아, 이거다! 화면 속 무음의 텍스트로는 절대 느낄 수 없었던, 공기를 타고 피부로 직접 꽂히는 묵직한 타격감.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자신감이 척추를 타고 단숨에 차올랐다. 내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손짓이 커질수록, 수강생들의 고개 끄덕임과 눈빛도 덩달아 거세게 반짝였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탁구공처럼 맹렬하고 경쾌하게 오갔다. 강의장 안의 80% 이상이 나와 완전히 동기화되어 있다는 짜릿한 확신. 나는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두 시간은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와 함께 허리를 굽히자, 강당을 꽉 채우는 뜨거운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2년 만에 온몸으로 맞는, 진짜 사람의 손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생생한 마찰음. 찌릿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으며 하마터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정해진 일정 탓에 서둘러 이 뜨거운 공간을 떠나야 하는 것이 못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텅 빈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지만, 한동안 핸들을 잡은 손의 미세한 떨림은 가시지 않았다. 마치 태어나 처음 놀이동산에 다녀온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다시 그 무대로 뛰어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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