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낸 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건강한 긍정

by 오종민

주변 사람들은 종종 저를 '긍정의 아이콘'이라 부르며 묻곤 합니다. "어떻게 매사에 그렇게 긍정적이세요?"


제 안의 '긍정적 스위치'를 처음 발견한 것은 살을 빼기 위해 학교 운동장을 달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목표는 10바퀴. 헉헉거리며 겨우 3바퀴를 돌았을 때, 누군가는 '아직도 7바퀴나 남았어?'라며 절망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땀방울이 턱 끝에 맺히던 그 순간, 저는 '와, 벌써 3바퀴나 해냈네!'라는 묘한 희열을 느꼈습니다. 남은 바퀴 수라는 '결핍' 대신, 내가 방금 이뤄낸 '성취'에 시선을 고정한 것입니다. 역으로 7바퀴쯤 돌았을 때는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면서도 '7바퀴나 돌았다'는 벅찬 성취감과 '이제 고작 3바퀴밖에 안 남았다'는 안도감이 저의 등을 떠밀어 주었습니다.


이런 시선의 전환은 이후 제 삶의 태도가 되었습니다. 군 복무 시절, 뙤약볕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무성한 풀밭 앞에서 제초 작업을 해야 할 때면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저 역시 막막했지만, 흔들리는 풀잎 대신 제 곁에 선 든든한 동료들의 숫자를 셌습니다. "우리 인원이면 이깟 풀밭쯤 금방이지!" 속으로 외치며 먼저 낫을 들고 풀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움직이자 동료들의 낫질도 빨라졌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깎여나간 풀밭의 면적이 넓어질수록 우리 얼굴엔 진한 뿌듯함이 번졌습니다.


사과 박스를 나르는 창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박스에 짓눌리는 대신, 텅 빈 창고 한구석에 내가 옮긴 박스가 하나둘 탑처럼 쌓여갈 때의 쾌감에 집중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해야 할 일의 무게'보다 '해낸 일의 가치'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아무리 고된 노동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든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긍정의 진가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했을 때'입니다. 실패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시도한 자만의 훈장입니다. 제가 기획한 업무가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나 좌초되었을 때, 저는 주저앉아 자책하는 대신 그 잔해 속에서 쓸만한 조각들을 주워 담았습니다. '이번 실패는 앞으로 겪을 더 치명적인 실수를 막아준 훌륭한 예방 주사야.'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 실패는 세간에서 말하는 '끝'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데이터'가 되었습니다.


딸아이가 첫 수학 시험에서 40점이 적힌 시험지를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온 날이 있었습니다. 잔뜩 주눅 든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우리 딸은 이제 앞으로 점수를 쑥쑥 올리면서 성취하는 기쁨을 남들보다 훨씬 크게 누릴 수 있겠네!"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정상으로 솟아오른 성공한 사람들도 필시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어차피 바닥을 쳤으니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 이제 남은 건 올라가는 일뿐이다.' 이 치열한 현실 인식과 배짱이 결국 그들을 다시 일어서게 만든 진짜 힘이었을 테니까요.


이러한 긍정의 시선은 제 삶의 든든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막막한 위기가 닥쳐도 암울한 현실에 주저앉기보다는 어떻게든 헤쳐나갈 돌파구를 먼저 모색하게 되었고, 짙은 불행 속에서도 둥둥 떠다니는 기회의 조각들을 발견하는 눈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단단한 에너지는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염되어,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밝은 원동력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꼽는 가장 큰 위력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내가 내디뎌야 할 다음 발걸음의 방향을 금세 찾아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365일 24시간 내내 긍정의 에너지만 뿜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영혼을 갉아먹는 가장 지독한 자기 검열입니다. 치열한 경찰 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히 무기력증에 빠지거나 세상이 잿빛으로 보이는 날도 있습니다. 만약 무조건적 긍정만 맹신했다면, 우울해하는 제 자신을 향해 "왜 이거밖에 안 돼? 왜 더 긍정적으로 마음먹지 못해?"라며 자책의 채찍질을 했을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에 죄책감이라는 이중의 무게까지 짊어지게 되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비가 오면 하늘이 흐리다는 사실을, 내 마음이 지금 몹시 지쳐있다는 사실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애씁니다.


세상은 긍정의 힘을 찬양하지만, 사실 저는 모든 종류의 긍정을 맹신하지는 않습니다. '긍정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듯, 때로는 무조건적인 긍정이 부정적인 현실을 회피하는 안식처로 변질되기도 하니까요. 슬픔, 분노, 두려움. 이런 감정들은 살아숨쉬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긍정은 이런 감정들을 억누른 채 "다 잘 될 거야", "무조건 좋게 생각해"라고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진짜 내면의 상처를 외면하게 만들어 결국 우울증이나 번아웃이라는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하죠. 제가 믿는 진정한 긍정은 부정적인 감정을 덮어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서늘하고 아픈 감정조차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직시하는 용기에서 출발합니다.


건강한 긍정은 비가 쏟아지는 날, 홀로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난 비가 좋고 행복해!"라며 억지로 웃음 짓는 기만이 아닙니다. 진짜 긍정은 비가 오고 있다는 축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평할 시간에 조용히 내게 맞는 우산을 찾아 펴거나,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으로 걸어 들어가는 실천입니다. 내리는 비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 비를 어떻게 맞이할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