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생각이 나를 다시 숨쉬게 할 때

by 오종민

경찰 생활을 하며 저는 제법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해 왔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을 시도하고,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다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한 편의 짧은 영상을 제작하며, 그 알량한 자부심은 보기 좋게 부서졌습니다.


학교폭력 신고 전화번호는 '117'입니다. 경찰은 이 세 자리 숫자를 알리기 위해 TV, SNS, 현수막 등 온갖 매체를 동원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내 아이의 일'이 아니면 굳이 기억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홍보 담당이었던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숫자를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꽂을 수 있을까?'


그래서 시도한 것이 '몸으로 표현하는 117' 프로젝트였습니다. 어른,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네 그룹으로 나누어 오직 몸을 이용해 117을 만들어보자는 계획이었죠. 시나리오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저 취지만 설명하고, 각자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일주일 뒤,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나갔습니다. 첫 타자는 저를 포함한 경찰서 직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씩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1', '1', '7'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촬영할 때만 해도 꽤 참신하다고 낄낄거렸지만, 뒤이어 학생들의 촬영본을 보며 저희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1차원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고등학생들은 교실 책상을 활용해 엎드리는 방식으로 숫자를 만들었고, 중학생들은 강당 바닥에 단체로 드러누워 거대한 117을 형상화했습니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정형적인 숫자 형태'의 범주 안에 있었습니다.


진짜 충격은 마지막, 초등학생들의 촬영 현장에서 터졌습니다. 아이들의 117에는 '형태'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수영, 축구 등 역동적인 스포츠 동작을 응용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117을 만들어냈습니다. 숫자가 살아 숨 쉬는 듯했습니다. 영상을 확인하던 순간, 저는 마치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창의적'이라고 믿었던 저조차도, 결국은 '숫자는 멈춰 있는 형태여야 한다'는 사회가 만든 틀 안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아이들은 형태와 규칙을 훌쩍 벗어나 자신들만의 우주를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틀리지 않는 연습'만을 해왔습니다. 시험에서 틀리면 감점을 당하고, 업무에서 실수하면 고과가 깎이며, 인간관계에서도 선을 넘는 것은 금기시됩니다. 그렇게 '틀리지 않는 방법'에 길들여지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새롭게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른이 될수록 경험은 쌓이지만, 그와 비례해 생각의 벽도 높아집니다. "그건 해봤는데 안 돼.",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야." 이 견고한 고정관념이 창의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입니다. 게다가 어른들의 세상은 늘 "빠르게, 정확하게"를 요구합니다. 효율과 성과가 지배하는 환경에서는 쓸데없는 생각이나 엉뚱한 상상이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세상을 바꾸는 창의력은 바로 그 '쓸데없고 엉뚱한 상상'에서 싹을 틔웁니다. 어른이 되어 창의력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능력이 사라져서가 아닙니다. 단지 생각의 방식이 경직되었을 뿐입니다. 창의력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것을 '꺼내는' 작업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창의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틀려도 괜찮은 나’**를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창의력은 '남보다 기발하게 생각하는 지적 능력'이 아닙니다. 내 생각의 틀을 깨고, '남과 다르게 생각해도 괜찮다'고 스스로 허용해 주는 '너그러운 태도'입니다.


오늘 하루쯤은 나에게 작은 일탈을 허락해 보는 건 어떨까요? 하나쯤은 틀려도 괜찮습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생각 하나쯤 해봐도 괜찮습니다. 그 작은 허용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우리의 일상에 다시금 어린아이 같은 생기를 불어넣어 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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