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주 오랫동안 '조수석'에 앉아 삶을 여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에서는 말 잘 듣는 아들이었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지시를 벗어나지 않는 조용한 모범생이었죠. 중학교 시절, 성적이 낮아 선생님은 실업계 진학을 권했지만, "무조건 인문계를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단호한 한마디에 저는 군말 없이 인문계 고등학교로 향했습니다. 성적이 더 떨어질까 속으로는 전전긍긍하면서도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해군 사관학교 시험을 치렀고, 지금 제 삶의 큰 기둥이 된 '경찰'이라는 직업도, 심지어 결혼의 타이밍조차도 아버지의 권유를 따랐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땐 그런 삶이 참 편안했습니다. 무엇을 선택할지 밤새워 고민할 필요도, 이 길이 틀렸을까 봐 두려워할 이유도 없었으니까요. 누군가 목적지를 입력해 준 내비게이션을 따라 그저 묵묵히, 성실하게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삶. 직장에서도 선배가 지시하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임을 수없이 학습해 왔습니다. 이 사회가 규정한 '평범하고 성실한 남성'의 궤도 안에서 저는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어가 빠진 문장처럼 주체가 없는 삶에는 결국 허무와 불안이라는 그림자가 찾아오기 마련이더군요. 나이가 들고, 가장이 되고, 어깨에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제가 직접 선택해야 할 교차로들이 쉴 새 없이 등장했습니다. 영원히 아버지의 조수석에 앉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오롯이 내게 운전대가 주어졌을 때,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내비게이션도 없이 낯선 초행길에 던져진 기분이랄까요. "이 길이 맞나?", "낭떠러지면 어떡하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했습니다. 텅 빈 원고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단 하나의 첫 문장조차 적지 못해 막막해하던 그 먹먹한 공포감과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제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했습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제 안에서 '이건 정말 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불꽃이 튄 것입니다. 그날의 가슴 떨림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억눌려 있던 진짜 '나'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었죠. 물론, 내가 개척하는 길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한 번도 내 발로 걸어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두려움을 압도하는 강렬한 설렘이 제 등을 냅다 떠밀었습니다.
타인이 정해준 길을 걷는 것은 비바람을 완벽히 차단해 주는 튼튼한 온실과도 같습니다. 잘 짜인 매뉴얼대로만 하면 '결정의 피로'도 없고, 실패하더라도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강력한 심리적 방패 뒤에 숨을 수 있죠. 하지만 그 안전하고 따뜻한 온실 속에만 머문다면, 거친 바람을 맞으며 피워내는 야생화의 생명력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덤불을 헤치고 길을 만들어냈을 때의 쾌감은, 남이 쥐여주는 그 어떤 보상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내가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레퍼토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중앙에 서는 벅찬 감동. 청중과 호흡하며 오롯이 내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나를 뿜어낼 때, 저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던 쳇바퀴에서 벗어나, 내일은 또 어떤 다이내믹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이 새롭습니다. 어쩌면 남들보다 조금 늦게 이 '스스로 개척하는 삶'에 발을 들였기에, 지금의 1분 1초가 더 애틋하고 소중한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운전대를 쥐는 삶은 여전히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아 아찔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폭발적인 짜릿함이 있습니다. 타인이 써준 정해진 대본을 과감히 찢어버리고, 오롯이 나만의 무대를 만들어가는 이 과정이야말로, 제가 진정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