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공기와도 같습니다. 공기의 존재를 보통은 의식하지 않듯이, 행복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행복을 찾아서', '행복해지기 위해' 등의 말을 쓰면서 우리는 행복을 삶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행복은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말이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아니오' 또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행복이 뭔지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럼 질문을 바꿔서 '당신은 행복했던 적이 한 번도 없나요?'라고 물으면 이번에는 다른 의미에서 '아니오'라는 답이 많이 나올 것이다. 분명 어린 시절이든 살아오면서 든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행복은 뭐라 정의하기가 참 어렵다. 현재 누리고 있으면서도 찾아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행복함을 느끼고 싶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다. 지금 당장 내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나는 매일 매시간 행복할 것이고 그것들이 지속되다 보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자식이나 손주를 대할 때,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마음에 품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사느냐, 어떤 인간이 되느냐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며, 본인의 과제입니다.
어른이 되어 아이를 바라보면 모든 것을 챙겨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동양에서는 아이가 넘어지면 얼른 뛰어가서 일으켜주지만 서양에서는 아이가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지켜봐 준다고 한다. 아이의 진로를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이들이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때 주로 이런 사람에 직업을 대입한다. 그러한 생각들은 아이들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아이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마치 그 아이가 잘못 커가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커간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자신이 잘못되었을 경우 대부분 부모를 원망한다. 스스로 커갈 기회를 잃었기 때문에 자신의 실패마저도 부모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생각보다 우리의 아이들은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때론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울 때도 있다. 우리가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다. 또 그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그들이 스스로 잘 헤쳐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른으로서 그들이 나아가는 길에 안내자의 역할만 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