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생인 아들이 물고기를 너무 키우고 싶어 했다. 어항 청소도 해야 하고 물도 갈아줘야 하는 수고스러움 때문에 지 엄마는 반대했다. 안타깝게도 나에게 결정권은 없다. 하지만, 아이에게 물고기를 두 가지 이유에서 사주고 싶었다. 첫 번째 이유는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느끼는 정서적 교감이다. 동물을 친구로 대하면서 정서적인 안정성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번째 이유는 좀 어처구니없을 수도 있다. 키우기도 전부터 죽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죽음을 경험한다. 그 충격이 오래가는 경우도 있고 믿지 않으려 마음속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잔인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이들이 그 죽음을 반려동물을 통해 미리 경험해볼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물론 반려동물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애정과 사랑을 듬뿍 주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반려동물로 인해 가족의 사랑과 죽음을 경험하면서 조금 더 아이들의 마음이 단단해지기를 바란 것이다.
결국 둘째 놈이 엄마를 이겼다. 물고기를 사기로 했다. 빨리 사고 싶었던지 결정과 동시에 실행으로 옮겼다. 몹시 흥분된 모습으로 동네 근처 대형 마트로 향했다. 물고기 코너에서 어떤 녀석을 데려올지 이리저리 고민을 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한참을 그러다가 결정을 내렸다. 어떤 녀석을 골랐나 슬쩍 봤더니 꼭 저를 닮은 녀석을 골랐다. 배가 볼록 튀어나온 진주린이라는 물고기였다. 진주린은 상당히 순해서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고 했다. 순한 것도 꼭 지녀석을 닮았다. 어항과 진주린을 고르니 사장님이 아주 작고 파란 물고기 세 마리를 덤으로 주셨다. 오히려 난 그 세 마리가 더 귀여운 듯했다. 진주린에 대한 내 첫인상은 그냥 뚱뚱한 기형물고기 정도였다.
집에 오자마자 어항을 씻고 물을 붓고 아이들을 어항으로 입주시킬 준비를 했다. 드디어 아이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집으로 들어갔고 신이 난 건지, 신기한 건지 이리저리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진주린이란 놈은 마치 물고기 귀족처럼 천천히 우아하게 어항을 탐험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어항 밖의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후 진주린에게는 이름이 생겼다. 아들 녀석이 지었는데 이름이 '둥이'라고 했다. 참 작명 센스 하고는. '둥이'가 온날 아들 녀석은 한 시간 넘게 그 녀석 앞에 앉아 그 녀석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매일 지 손으로 아이들 밥을 챙겨주고 며칠에 한 번씩 엄마와 함께 어항의 물을 갈아주었다.
그러다 2020년 12월 31일 사건이 터졌다. 둥이가 우리 집으로 온 지 두 달 정도 됐을 무렵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의 다른 부서에 커다란 어항이 두 개 있는데 거기서 물고기를 직원들에게 무료로 분양해줬다. 물고기가 더 있으면 둘째 녀석이 좋아하겠다는 생각에 코리도라스라는 물고기 두 마리를 데려왔다. 사건이 터지기 이틀 전이다. 코리도라스는 진주린과 달리 엄청 활달한 녀석이었다. 어항에 들어가자마자 여기저기를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녀석들에게는 어항이 좀 작은 듯했다. 첨엔 진주린도 새로운 친구들이 반가운 듯 함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역시 아들 녀석도 엄청 좋아했다. 이틀 뒤 아침 '둥이'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어항의 한쪽 구석 위쪽에 둥실 떠 올라 밑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가 싶기도 했지만 진주린은 맑은 물을 마시기 위해 한 번씩 그런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런데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둥이 녀석이 죽고 말았다. 몸에 상처가 나 있었다. 코리도라스의 활발함이 녀석에겐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그 녀석들을 피해 다니다 몸에 상처를 입었고 결국 죽어버린 것이다.
아들 녀석이 난리가 났다. 엄청 울었다.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우는데 진짜 가족 중 누군가 죽은 듯한 분위기였다.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괜히 다른 녀석들을 데려와서 둥실 이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아들 녀석을 꼭 안아주었다. 한참을 울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우리는 둥실 이를 묻어주기로 했다. 둥실 이를 종이컵에 담고 작은 모종삽을 들고 아들과 나는 집 밑 화단으로 갔다. 화단을 파고 그 안에 둥실 이를 묻고 우리는 조용히 묵념을 했다. 아들 녀석은 다시 울며 둥실 이에게 말했다.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행복했어 둥실 아 사랑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하며 또다시 미안해졌다. 아들 녀석의 마음속에 둥실 이가 얼마나 크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 왜 그리 몰랐을까? 아들 녀석은 잠자리에 들어서도 둥실 이가 계속 생각난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반려동물을 사주게 된 나의 목적 중 하나를 이룬 것이지만 참 못할 짓이다 싶었다. 아들 녀석은 아마 잘 이겨낼 것이다. 그 녀석에겐 첫 번째 죽음의 경험이다. 사랑과 그리움 등의 감정을 가슴속에 잘 갈무리하고 한층 더 성장할 것이다. 둥실 이에게 미안하다. 잘 가라 진주린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