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도 괜찮다

by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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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을 걷다 보면 이곳이 한때 가장 찬란했던 자리였다는 사실보다, 얼마나 오래 비어 있었는지가 먼저 느껴집니다.


왕의 궁궐이었고, 나라의 심장이었으며, 수많은 명령과 기도가 오가던 곳. 그러나 이 넓은 마당에는 언제나 말해지지 않은 시간들이 고요히 남아 있습니다.


이상하게 돌바닥 위를 걷는 제 발소리는 자주 스스로를 낮춰 조심이 걷게 되고 뜀박질이나 큰 소리가 여기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역사는 늘 그렇듯, 지나간 권력보다 남겨진 침묵이 더 큰 법일까요.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270년 동안 오랜 세월 방치되었고, 다시 세워졌다가 일제 강점기에 또 한 번 철저히 무너졌습니다.

경복궁은 단 한 번도 온전히 지켜진 적이 없는 상처의 공간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상처의 공간보다는 위로의 공간에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수없이 철저하게 무너졌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경복궁을 걷는데 불현듯 공간에서 위로를 느껴버렸습니다.


어쩌면 이 궁이 ‘위엄의 상징’이라기보다 회복의 증거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무너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집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곳.

그 까닭에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게 하는 것은 아닐는지.


경회루 앞 연못을 바라보면 물은 언제나 아무 일 없다는 잔잔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 물 아래에는 수백 년의 아픈 그림자가 겹겹이 잠겨 숨쉬고 있습니다.


경복궁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문장 같습니다.

복원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상처를 딛고 가장 건강한 재건을 꿈꾸며 하루하루씩 나아가는 중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곳은 박물관도 아닌 왕궁도 아닌,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치유의 공간이자 회복의 장소에 더 가까운 곳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무너진 마음에 어쩌지 못할 때, 사람에게도 위로를 받는 게 버거울 때면 경복궁을 다녀오십시오.


경복궁을 한 바퀴 - 휘 돌고 이곳을 나설 때면 큰 숨을 내쉬며 주먹을 불끈 쥐고 허리를 펴게 될지도 모릅니다.


잘 살라는 명령도, 잘 버티라는 충고도 없이 웅장한 울림이 느껴질 것입니다。


— 무너져도 괜찮다.

다시 세워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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