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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Oct 19. 2016

모든 이별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생의 모든 이별에 관하여


가수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라는 노래를 듣다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십대 무렵 나보다 삶을 더 산 선배들은 이 노래 한 곡에 모든 인생이 담겼다며 불후의 명곡이란 찬사를 보내며 감탄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노래가 좋았을 뿐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가사가 직접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아직 만남에 익숙한 이십대였다.   


나이 때문이었을까. 서른 즈음 노래를 다시 들었다.

이십대에 맺은 인연들 중 또래의 결혼 소식이 들렸고 취직 소식이 들렸으며 어른으로 모시던 분들은 갑자기 운명을 달리 했다는 부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십 대에 여기저기서 이뤄놓은 만남이 서른 즈음이 되자 모래처럼 재빨리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만남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대해서 무던한 척 하려 했지만 자주 무너지곤 했다. 마음을 준다는 것에 대해 사고했다. 어디까지 주고 어디까지 받아야 하는가.

어린 시절의 만남은 쉬웠지만 나이가 들수록 만남은 어려워져갔다.


한 장의 달력을 넘기고, 일초가 흐르는 모든 순간에도 이별의 연속이었다.

이별로 인한 상처의 깊이가 많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저마다 시인이 되어 갔다.

어느덧 만남보다는 이별이 익숙한 사람이 된다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아침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젯밤과 이별해야 하고, 또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 붙잡아 두려고 해도 우리에겐 이별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없다.


꽃이며, 바람이며, 사랑하는 사람이며, 친구들이며 사라지는 꿈같은 것들을 함부로 붙잡아 둘 수 없다.


만나고 떠나는 모든 것은 죄다 이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이별을 마치는 그 시점에 우린 다시 사랑할 것이다.

굵고 짧은 이별이라 할지라도, 잦고 긴 이별이라 할지라도 살아서 무엇이든 사랑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모든 이별은 아플 것이다. 그러나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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