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서의 고백
오래전부터 심한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술이 늘었고 욕이 늘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인내심을 갖지 못하고 포악해진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이 예민하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 이런 대화를 주고 받은 것 같다. 우린 어린 시절부터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꿈을 품고 자라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난 뒤 그 꿈을 이루고 나면 별 게 없다. 그 기쁨도 잠시 허무함이 오기도 한다.
어른이 되는 것은 기쁨이 아니다. 그렇다면 꿈을 이루고 난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죽고 난 뒤 다음 세대에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런 세상을 물려주는 일조차 막막하다는 생각을 했다. 힘을 가진 권력의 횡포와 오만함. 잘못을 저지른 악자를 구속하지 않는 검찰. 모르쇠로 침묵하는 정권과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아무 생각이 없어보이는 여자 대통령.
세월호 사건으로 아이들이 바닷속에 가라앉을 때 내 이야기가 아니어서 크게 아프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내 이야기가 아니어서 크게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이야기여서 슬펐다.
그 소설 같은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더 슬펐다.
해맑았던 아이들은 나만의 친척일 수도 있고,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은 우리 아버지, 친구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국가는 국민에 의해 존재하면서도 국민을 죽여놓고 책임자 처벌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언제나 잘못을 저질러 놓고 책임자는 뒤로 숨기 바빴고, 권력에 가까이 있는 자들은 교모히 모습을 감추고 열심히 사는 서민들보다도 나은 삶을 살고 있었다.
이 밖에도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아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해버린 자들도 버젓이 살아 있었다.<자백>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국정원의 실세였던 김기춘, 원세훈 등등>
이 부도덕한 사람들의 꿈도 권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꿈을 꾸면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열심히 성공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들을 내 입으로 하기 어려워졌다.
실제적으로 꿈을 이루면 자신 스스로 성취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2월 그토록 바라던 한 권의 책을 내는 순간 나는 세상에도 없는 환희 같은 것을 느껴보았다. 순수한 내 힘으로 이뤄낸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주변을 둘러 보았을 때 그것은 나 혼자만의 행복이었지, 더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영향을 끼치는 일과는 별개였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이들이 위로 받았다는 사실엔 감사하지만, 아직도 모자란 갈증이 나에겐 있는 것이다. 선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난 뒤에 그 힘을 자신과 타인을 향해 쓸 수 있다면 그땐 정말 행복하겠다. 그러나 나는 감히 꿈꾸라고 하지 못하겠다.
우리가 꾼 꿈이 어떻게 악용될지 모르니 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이 국가에서 단순히 꿈을 꾸고 본인의 꿈을 이루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체면을 걸기가 좀처럼 어려운 것도 그만큼 부조리하고 부패한 사회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어른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게 되는 것만 같아 괴롭기 때문이다.
대체 산다는 것을 무엇일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성취와 더불어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혼자 꿈을 이루고 행복해 한들 그것이 주변 사람에게 선한 쪽으로 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그 꿈은 의미 없는 것으로 그칠 수도 있다.
자아성취가 독이 되어버리면 안 된다는 뜻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의사가 되어도 윤리를 저버린 채 양심을 팔아 외인사를 병사라고 적어버린 바보 의사.
옳고 바른 선은 뒤로하고 권력에 눈이 멀어 자기 밥그릇만 챙기기 바쁜 국회의원들.
약한 사람들을 보살피지 못하고 모르쇠로 자기 고집으로 나라를 말아먹는 대통령.
글쓰기 재능을 가지고도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못하는 언론인.
이 모든 특권 세력들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피터지게 노력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꿈에 눈을 떴지만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행복엔 눈을 감았다.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고,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특권 세력의 말들은 젊은 이들에게 혼을 팔아서라도 이 더러운 세계에 구르고 굴러서 다이아몬드가 되라는 개소리에 가깝다.
그런 사람들이 군림하는 세상속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아게는 대가가 주어지지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없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특권 세력 밑에서 그 세력이 사라지기 전까지 을의 신분으로 사는 것 뿐이다.
물대포로 사람의 목숨을 잃게 하고 1년 가까이 슬퍼할 시간도 주지 않은 경찰과 검찰, 이 나라가 징그럽게 싫다. 사람의 인권조차 제대로 지켜주지 않고 보호해주지 않는 나라에서 꿈을 꾸며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싶다.
젊은 이들에게 함부로 꿈을 꾸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워졌다.
감히 꿈꾸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부디 꿈을 꿔야만 하고, 그 꿈을 이룬다면 자신의 힘으로 약한 자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길.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그런 어른이 되길.
어른의 과제는 언제나 다음 세대에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일이 되어야 하니까.
글 사진 이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