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한민국 11월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이면 매일 같이 가슴 속에서 울고 있는 남자 아이를 만난다.
몇달 전부터였을 것이다.
세월호의 오래된 침묵.가라않은 분노가 밖으로 스멀스멀 올라오고 내일이 아니라서 멀어져야 했던 시간들 속에 나는 낯선 타자였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하고 부검을 해야 한다며 괴롭히는 경찰과 권력. 나서서 보호해주지 않는 나라의 태도에도 댓글로 욕이나 쓰는 이웃이었다. 물대포에 관여된 누구하나 아웃시키지 못했다. 빌어먹게도.
밥벌이를 위한 회사원 그리고 면접관으로서 면접을 볼 때마다 간절함을 지니고 온 지원자를 탈락시키며 간절함은 있으나 회사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며 그 간절을 꺽어버릴 때도 나는 일개의 직장인. 퇴사하고 나면 서른셋의 백수에 지나지 않는 청년이었을 뿐 그다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왜 모든 타자의 일은 내 일처럼 여기지 않는가.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니라서? 직접 그 상황을 겪어 보지 않아서?
진척없는 소개팅과, 통보없이 멀리 떠난 이별에도 무던해지고 마는 것은 어차피 그녀들과 나도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낯선 사람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티브이에선 아무리 잘못을 저절러도 뻔뻔함으로 일관하면 그 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인간 이하의 상식을 상실한 정치인을 볼 때마다 화를 냈으면서도 그러고 나면 그뿐.
그 사이 정치인. 대통령과 대통령의 친분있는 여자는 삼대나 먹고 살아도 충분할 만큼 모든 것을 다 해처먹었고 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권력 앞에선 손가락 까딱하나 못한다는 더러운 교훈을 알려주었다.
실적도 결과도 제대로 된 것이 하나 없었다.
내일이 아니라서 거리를 둔 그 많은 것들이 마치 이제는 내일처럼 쓰나미가 되어 몰려온다.
밤마다 어둠 속에서 자꾸 악마가 속삭이듯
너는 세상 하나 이롭게 하지 못했다.
너만 행복했다. 너에게만 취해 있었다.
아픈 문장들이 나를 괴롭힌다.
혼자 배우고 혼자 잘난 것은 현 사회에서 볼 수 있듯, 자신의 행동이 양심을 저버리고 욕심으로 채워질 때 독선, 아집 불통, 거만, 교만으로 그칠 확률이 높다.
비록 그런 삶이 행복하다 할지라도 그 행복의 유효기간은 쉽게 소멸하고 만다.
소통과 연대. 나눔. 공감. 위로. 결속. 그리하여 같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나누는 것.
나 혼자만 이롭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괴롭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 바라건대 요즘에야 절실하고 간절히 필요한 나의 간절인 것이다.
남의 일로만 여기고 눈 감았던 일.
나의 일이 아니라서 외면 했던 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지 못한 일.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여도 죄가 많을 것이다.
매일 같이 가슴 속에서 울고 있는 한 남자와 당신의 또 다른 이름. 그들을 살리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외면 하지 않는 것. 그동안 그래왔다면 이제는 아니어야 하는 것.
아프고 부패와 권력으로 찌들어버린 이 우울의 시대를 벗기기 위해 저항하는 것. 이제는 소리치는 것.
침묵했다면 더이상 나를 위해서라도 침묵하지 않는 것.
글 사진 이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