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러려고 투표를 했나.

자괴감에 대하여

by 이용현


반장 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반장 선거를 하는 날이면 회장부터, 부회장, 부반장 모두 한꺼번에 임원이 나오는 날이기도 했다.


"앞으로 한 학기 동안 우리 학급을 이끌어나갈 임원을 선출하는 날이니까, 여러분들은 잘 판단해서 우리 학급을 위해 봉사해 줄 친구를 잘 선택할 수 있도록 해요."


A)"제가 반장이 된다면! 어떤 학급보다 깨끗한 교실을 만들고 여러분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B)"제가 반장이 된다면! 모두 다같이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즐거운 교실을 만들겠습니다!


학급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투표권을 행사했고 반장이 된 친구는 한 학기 동안 반을 대표해 선생님이 없을 때 반을 대표하는 일, 아침마다 차렷, 경례를 하는 일, 등등 반에 여러 일을 도맡아 했다.


운동회, 소풍 등 학교 행사가 있는날이면 반장부터 회장 등의 부모님들이 나타났다.

빵과 요구르트를 돌리며 잘 부탁한다고 했다.

"우리 아이를 반장으로 뽑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잘 부탁한다고."

투표권을 행사한 대가로, 그 친구를 뽑아준 부모님들은 우리들에게 고마운 표시로 고개를 숙이고 맛있는 것들을 돌렸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임원들은 부모님의 빽으로 특권을 가지고 특혜를 마음껏 행사하지 않았다.

적어도 반을 대표해 봉사하기 위한 아이들이었으니까.


내가 행사한 투표권이, 그 아이의 이름을 쓴 내 손이 부끄럽진 않았다.

내가 뽑지 않은 다른 친구가 당선되어도 그 친구는 최소한의 양심에서. 상식 수준에서 반을 위해 봉사하고 꾸려나갔기 때문이었다.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대통령의 선가가 있던 날에는 부모님의 빽을 가진 여자 대통령이 나타났다.

학급 임원 선가와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국민들을 위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봉사를 하겠다고 고개 숙였지만, 정작 승리를 쟁취한 이들은 더이상 내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았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찰이나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국민의 편이 아닌 우리의 손으로 뽑아서 만들어준 승리한 자들의 편이었다. 무고한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쏴죽였고, 책임자와 권력자들은 사과하지 않았으며. 수백명의 아이들을 바다 안에 가둬놓고도 구조 및 강력하게 조사하지 않았다. 세월호라는 이름 만큼이나 세월이 지나도 진상조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대통령의 7시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청와대, 대통령은 국민의 투표권으로 월급을 받고도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온갖 특혜와 비리, 특권을 행사하며 따뜻하고 배부른 곳에서 자신의 삶을 호화롭게 영위해나간다.


차가운 길바닥에 내몰린 노숙자, 전세계 자살률1위를 기록하고 있는 청소년, 미래를 이끌어가야 하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실업자, 폐지를 줍지 않으면 일거리가 없다는 노인들, 자녀를 낳는 일이 기쁨은 커녕 빚을 지는 일이라는 비극의 기혼세대들에게는 더이상 관심이 없어 보인다.

관심이 없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건데 그간 많이 바빴던 것으로 보인다

비아그라를 사느라 바빴고, 개돼지인 국민들에게 더 많은 비리들의 얼룩을 감추기에 바빴고, 뒷돈을 챙기기에 바빴고, 그 누구도 투표하지 않은 지인에게 연설문을 수정하며 대리 정치를 하게 만드느라 바빴고, 기업들에게 돈을 뜯어 내느라 바빴고. 세월호를 묻어두기에 바빴다. 또한 국민이 아닌 자신들의 지인들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의 특혜를 주면서 국민들이 준 투표권을 이용해 상식 이하의 짓들을 하느라 바빴다.


어떻게든 치열하게 살고 바쁘게 살면 뭐라도 되겠지. 했던 지난 나의 청년시절과는 달리 바빠도 너무 다르게 바빴다.

지금의 현실을 돌이켜 보면 내가 이려러고 투표를 했나 자괴감이 들 정도다.


나는 그렇다 치고, 모아놓은 재산 하나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부모님은 TV앞에서 멍하게만 웃고 있는데 피의자이자 무능한 박근혜는 탄핵되거나 실형을 받아도 68억원의 규모 사저 경호동 마련과 인근 경호와 경비 예우를 받는다고 하니 허탈함과 허무함이 밥상머리마다 올라온다. 하야할 경우에도 월 1200만원 가량의 연금을 받는 다고하니, 법은 법대로 지키면서,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살아온 부모님의 삶과는 극단적이게 대조적이어서 살짝 웃프기도 하다.


어제는 차가운 광화문 바닥에 앉아 촛불을 다시 들었다.

하얀 입김이 나풀거리고 뼈가 시려오는 가운데 지난 날의 반장 선거가 생각났다.


열심히 봉사하겠다던 반장들.

반을 위해 내가 해야 될 일을 도맡아 하던 이들.

그들은 요즘 광화문에 있을까.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하다던데,

특권을 남용하지도 않았고 특혜를 입지 않았던 그 친구들이 혹여나 억울해하진 않을까.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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