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문을 고치다 대통령이 된 최순실
종이 위에 적힌 건 나의 삶이 아니었다. 명백한 타인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 나이, 환경을 조사한 뒤 하나 둘씩 써내려가자 나는 마치 그의 삶이 되는 것처럼 내게 대행을 맡긴 그 사람에게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무서운 일이었다.
스물 일곱즈음 실업자로 지내며 자기 소개서 대행알바를 했었다. 급하게 자기 소개서가 필요한 사람, 혹은 한 번도 써보지 않아 자기 소개서를 쓰기 어려워 하는 사람들의 자소서를 대필해주는 일이었다.
오만원을 입급하면 나에겐 2만원 가량이 지급되었고, 나머지 돈은 대행 업체로 들어갔다. 급한 건 7만원을 받았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땐 다시 수정까지 해주는 서비스였다.
"마음에 들지 모르겠지만 주신 정보가지고 이 부분을 조금 강조했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그런 것 같네요. 고쳐주세요."
"네, 죄송합니다. 다시 해서 보내드릴게요."
은행원으로 지원하는 여자, 승무원에 지원하는 여자, 삼성전자 장애인 채용에 지원하는 남자가 있었다.
행원은 떨어졌고 승무원에 지원하는 여자는 붙었다. 삼성전자를 지원했던 남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가 준 자소서의 초고를 받았을 때 심하리 만큼 맞춤법과 문맥들이 부정교합처럼 뒤틀려 있었다는 것 밖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학력을 비추어 봤을 때 높은 언어를 구사하면 안된다는 것이 자소서를 대필 하는 내가 주의해야 할 사항이었다.
그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만족스럽다는 답장을 끝으로 깔끔히 거래를 마무리했다.
자소서를 쓰는 동안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건 그의 정보를 받는 순간 그 사람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감정 이입을 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래야만 진정성 있고 가짜가 아닌 진짜 자소서를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막히는 부분이 있거나 모르는 게 있으면 직접 전화를 하기도 했다. 지원하는 회사의 질문에 답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의 정보를 찾는 일도 내가 해야 하는 몫이었다.
타인의 자소서를 쓰는 동안 나는 없었다. 오직 그 사람만의 인생이 내 손가락에서 움직였다. 나는 나에게 대행을 맡긴 사람의 나이, 환경.가치관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자소서 한장에 나라는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인생을 모두 적어내야 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을 쓰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살아보지 않은 삶을 어떻게 살아본 것처럼 쓴단 말인가. 그것도 나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그러나 나는 돈을 벌어야 했고. 2만원이 간절히 그리웠고. 그래야만 했으므로 최면에 최면을 걸고 그 사람이 되어 글을 적기 시작하면 어느새 뚝딱 자소서 한 장이 마무리 되었다.
마침표가 찍힐 때쯤 내 자아는 사라지고 없었고 그 사람과 동일시된 내가 있었다. 승무원 자소서를 쓰는 여자의 스팩이 너무도 화려해서 나도 마치 화려한 삶을 살아본 듯했고, 장애인인 남자의 삶은 비록 보잘 것 없으나 반드시 자신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염원이 강하여 나는 희망에 넘친 사람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 벌어진 최순실의 국정농락 사건을 나는 이해한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받아 고쳐썼으니 그 순간 만큼은 이 나라를 움직이는 대통령이 된 착각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행위가 옳은 행위가 아닌, 나에게 절절했던 2만원과의 거래가 아닌, 누구도 뽑지 않은 민간인의 신분으로 친분을 활용해 대통령의 연설물을 고치고, 인사개입등 대통령 행세를 했다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매번 변명과 거짓말로 핑계에 앞장서는 대통령.
그럴듯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연설문 하나 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것에 더 큰 분노를 느낀다.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글로 정리해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의 주관을 표현하는 일을 남에게 맡겨 버리면 그건 자신의 생각이 되지 못하고 글에 손을 대는 사람의 생각이 되어 버린다.
결국 지금의 사태는 최순실이 연선물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부터, 무능한 대통령이 연설문을 민간인에게 대행을 맡기면서부터 자신의 주관을 타인에게 의존하고 대리 결정하게 만든 셈이다.
주관이 없어진 대통령은 대행하는 최순실의 손가락에 그럴듯이 움직이고 최순실은 감정이입 되어 자신이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면서 대통령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장은 종이 위에서, 혹은 키보드 위에서 손을 떼야 끝이 난다.
비문일지라도, 미완성의 문장일 지라도 끝마칠 자신이 없으면 그냥 손을 떼고 종이 밖으로 나와야 한다.
억지로 손을 대고 있으면 비문이 생기고 진실된 글이 아닌 허구성이 있는 글로 문장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연설문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수첩없이는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대통령.
그가 통치한 대한민국이 미완성일지라도 그냥 손을 떼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글을 도저히 못쓰겠을 땐 내버려 두는 것이 낫듯이 자격이 되지 않을 땐 그 자격을 그냥 놓아버리는 것이 낫다.
글 사진 이용현